친권·양육권이 없는 부모는 미성년 자녀의 범죄로 피해가 생겼을 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감독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한겨레 자료
친권·양육권이 없는 부모는 미성년 자녀의 범죄로 피해가 생겼을 때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감독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14일 ㄱ양 부모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ㄴ(범행 당시 17살)씨는 2018년 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피해자 ㄱ(당시 16살)양을 알게 됐다. 그해 8월 ㄴ씨는 ㄱ양의 신체를 불법 촬영한 뒤, 연락을 받지 않는다며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ㄱ양을 협박했다. ㄱ양은 이 대화 내용을 본인의 에스앤에스(SNS)에 올리고 같은 달 숨진 채 발견됐다. ㄴ씨는 성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및 협박 혐의로 보호처분 결정을 받았다.
ㄱ양 부모는 ‘당시 미성년자였던 ㄴ씨를 교육하고 보호, 감독할 주의의무가 있지만 이를 게을리해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ㄴ씨와 그 부모를 상대로 4억3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했다. 이에 ㄴ씨를 키워온 어머니는 ㄴ씨가 모범생이라 일탈을 예상할 수 없어 감독의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ㄴ씨 아버지인 ㄷ씨 또한 아들이 만 2살일 때 아내와 이혼한 뒤로는 아들에게 연락하지 않아 감독의무 위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쟁점은 친권자, 양육자가 아닌 ㄷ씨가 자녀의 불법행위에 대한 감독의무자 책임을 지는지였다. 1심은 ㄱ양 부모 주장을 받아들였다. 1심 재판부는 ㄴ씨와 그의 어머니, 아버지인 ㄷ씨 책임을 인정해 3억7812만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ㄷ씨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ㄴ씨 일탈을 사전에 감지하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책임 정도를 10%로 판단했다. 2심도 ㄷ씨 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이혼으로 부모 가운데 한명이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된 경우, 그렇지 않은 부모(비양육친)는 미성년자 부모라는 사정만으로 미성년 자녀에 대해 일반적인 감독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비양육친이 자녀에 대해 현실적 실질적으로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지도, 조언을 해서 공동 양육자에 준해 자녀를 보호 감독하고 있거나 △자녀 불법행위를 구체적으로 예견할 수 있던 상황에서 직접 지도, 조언을 하거나 양육친에게 알리는 등의 조처를 하지 않은 경우 등에는 “비양육친도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어 “ㄷ씨는 가해자의 친권자 및 양육자가 아니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감독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원심은 미성년자에 대한 감독의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만 비양육친이 감독의무자 책임을 진다는 점을 최초로 설명한 판결”이라며 “이 판결이 미성년 자녀의 불법행위에 대한 비양육친의 손해배상책임 인정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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