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를 직접 하지 않고 감독만 한 도급 사업주에게도 산업재해 예방 조처를 할 의무가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산업안전관리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한국전력과 ㄱ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한전 충북본부는 2017년 6월 충북 청주 흥덕구의 철탑 이설공사를 발주하며 한 전기설비업체에 사업을 맡겼다. 그러다 11월 이 업체 소속 ㄴ(당시 57살)씨가 약 14m 높이에서 작업하다가 감전돼 바닥으로 떨어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검찰은 한전 충북본부장이던 ㄱ씨와 한전 등이 안전조처를 충실히 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판단해 재판에 넘겼다. ㄴ씨가 절연용 보호구 등 안전 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하도록 했다는 이유에서다.
ㄱ씨는 재판 과정에서 “충북 지역 소속 한전 직원 900여명과 관할 지역 내 2017년 영업일 기준 1일당 공사 73건을 모두 관리·감독할 수 없다”며 “구체적 안전관리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은 ㄱ씨에게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한전에는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한전을 도급 사업주로 인정해 안전관리책임자를 ㄱ씨로 본 것이다. 재판부는 “한전이 공사 일부인 지장철탑 이설공사를 분리해 도급하는 등 사업을 하도급한 사실이 있어, 도급 사업주에 해당한다”며 “수급인이 사용하는 노동자에 대한 산재예방을 위한 조처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한전이 이 공사 도급 사업주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는 이상, 한전 공사 관리책임자인 ㄱ씨가 안전조처를 취해야 하는 지위에 있고, 구체적 안전관리의무 등을 부담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와 업무상과실치사죄 행위자 역시 ㄱ씨”이라고 판시했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도 “원심이 한전을 도급 사업주에 해당한다고 봐 유죄로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 ㄱ씨와 관련해 안전관리의무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도 없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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