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아이피 정보 제공할 수 없습니다” 통신사 때문에 수사 어렵다?

등록 2022-04-21 15:28수정 2022-04-21 15:47

경찰 “n번방 수사 위해 통신 정보 추가 확보 필요”…“투망식 수사는 안 돼” 비판도
경찰청,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범위 확대 취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용역연구 보고서
“민감한 개인정보…허가요건 엄격해야” 지적도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경찰이 ‘엔(n)번방’과 같은 인터넷 기반 범죄 수사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높이려고 아이피(IP) 주소, 위치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인터넷 통신사실확인자료 추가 확보 근거 마련에 나섰다. 나날이 증가하는 사이버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처한다는 취지지만, 수사기관의 광범위한 자료 수집으로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법원 허가요건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1일 경찰청이 발주한 연구용역으로 지음법률사무소가 수행한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범위 관련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개정 방안’ 보고서를 보면, 사이버 수사를 담당하는 일선 수사관들은 수사 과정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케이티(KT), 에스케이텔레콤(SKT), 엘지유플러스(LGU+)와 같은 기간통신사업자(통신사)가 인터넷 통신내역 관련 정보를 통신사실확인자료로 제공하지 않는 것을 꼽았다.

‘통신사실확인자료’는 이용자가 통신을 쓴 날짜, 시간, 시작 및 종료 시점, 상대방, 장소 등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 정보를 가리킨다. 현재 경찰은 통비법에 따라 수사 목적으로 법원의 허가를 받아 통신사에게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을 요청하지만, 인터넷 통신자료의 경우 통신사들이 기술적인 어려움, 비용 증가, 이용자들의 기본권·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자료 제공을 꺼리고 있다. 연구진은 통신사들이 통비법상 자료 제공 의무는 있지만, 벌칙조항이 없어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도 제재를 받진 않는 탓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보고, 통비법에 협조 의무를 미이행할 경우 벌칙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했다.

연구 인터뷰에 참여한 수사기관 담당자들은 통신사들이 인터넷망 이용자의 아이피 주소와 가입자 정보 이외에 ‘송수신 아이피 정보’, ‘네트워크 위치’ 등은 “확인할 수 없다”는 답변을 보내와 피의자의 아이피 주소를 거점으로 한 다양한 인터넷상 범죄행위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 정보들로 인터넷 통신의 성공과 실패 기록을 확인하고, 특히 조직범죄의 경우 범죄의 공범과 피해자들을 정확하게 빠르게 특정해 수사를 진행하고 범죄를 입증할 수 있다고 한다. 경찰청 통계상 사이버 범죄 발생 건수는 지난 2019년 18만499건에서 2020년 23만4098건으로 1년 새 약 29.7% 증가했다. 연구진은 “‘텔레그램 엔번방 성착취 사건’을 계기로 통신자료에 대한 취급이 기본권 침해가 아니라 보호의 측면에서 검토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수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통신사실확인자료 수집, 보관, 제공 여부가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5년 통비법이 신설된 뒤 인터넷 통신 환경과 사이버 수사 여건이 급변했지만,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요청 관련 조항은 개정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미국·독일 등 해외 국가들은 통신사실확인정보의 범위를 광범위하고 상세하게 규정해 원활한 수사를 돕는다며 통신사실확인자료에 인터넷 사용자의 △통신개시·종료일시 △통신 송수신 아이피 주소 △통신데이터양 △인터넷 로그 기록 △정보통신망에 접속하기 위해 사용한 정보통신기기의 위치 등을 포함해 범죄의 실행 및 시도를 입증하는 증거 및 수사의 단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인터넷 통신은 기본적으로 한 정보통신기기에서 다른 정보통신기기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인데, 통신사들은 이러한 통신 과정의 중간에서 모든 정보 통신을 매개하고 이미 이 정보를 인터넷망 유지관리 등의 목적으로 저장하고 있다”며 기술적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

다만 통신영장(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요청)이 상대적으로 형식적이라는 지적도 이어지는 터라, 정보 제공 요건을 엄격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범죄를 막겠다는 취지더라도 수사기관의 남용을 막기 위해 사전·사후 통제 장치가 마련되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사법연감을 보면, 2020년 통신영장의 발부율은 95%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영장 청구사건 평균(91.7%) 및 압수수색영장(91.2%) 발부율에 견줘 높은 편이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얼마 전 논란이 된 공수처의 ‘통신자료’는 가입자 정보 등 기초적인 수준의 정보인데도 민감하게 받아들여졌다”며 “통신사실확인자료는 개인이 어떤 사이트를 자주 방문하고, 누구와 정보를 주고받았는지 알 수 있는 훨씬 민감한 정보를 담고 있기에 형식적인 법원의 허가가 아닌 실질적인 요건을 명시해 정말 필요한 경우에만 정보를 요청할 수 있도록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손 지원 오픈넷 변호사도 “보고서상으로는 범죄 혐의자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통신사실확인정보까지 일괄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통신사에 부과해 이는 투망식 수사로 확대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며 “신속한 수사와 범죄 근절이라는 취지에 치우치다 보면 통신의 비밀과 자유가 침해될 수 있는 만큼 사전적·사후적 통제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청 사이버수사기획과 관계자는 “논란이 됐던 통신자료와 달리 통신사실확인자료는 법원 허가 절차를 거치는 것이라 남용될 우려는 크지 않다”며 “향후 통비법 개정 논의가 있을 때 용역연구 내용을 관련 근거로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