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영원한 이방인’과 평생 멍에 썼던 가족들

등록 2022-04-23 07:29수정 2022-04-23 10:29

[한겨레S] 기고
한국인 한센가족 보상 청구 1년

일제강점기 강제격리·절멸 정책
해방 뒤에도 가족까지 배척당해
일, 한국 피해가족 10명 보상 시작
남은 피해자 보상 계속 이뤄져야
미국 의료선교사들이 한센병 치료를 위해 1911년 설립한 여수 애양원(당시 광주 나병원)은 소록도와 달리 그나마 자발적 입·퇴소가 가능했던 병원이다. 사진은 당시 수술실을 보존한 모습. 박성태 사진가 제공
미국 의료선교사들이 한센병 치료를 위해 1911년 설립한 여수 애양원(당시 광주 나병원)은 소록도와 달리 그나마 자발적 입·퇴소가 가능했던 병원이다. 사진은 당시 수술실을 보존한 모습. 박성태 사진가 제공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bit.ly/319DiiE

평화의 상징, 흰 사슴이 산다는 소록도의 역사. 소록도는 전남 고흥군 녹동항에서 직선거리 600m, 배로 5분 거리에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잊히고 싶도록 멀고도 먼 섬이었다. 한센인 차별과 편견의 역사를 간직한 섬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1916년 소록도에 자혜의원을 설치했다. 한센병이 문명국의 치욕이라고 여긴 일본은 한센인에 대해 강제격리와 절멸 정책을 시행했다. ‘자비로운 은혜’라는 이름과 달리 소록도 자혜의원은 한센인 강제격리시설이었다. 일제 통치 아래에 강제로 끌려온 한센인들은 인권침해와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때 일본은 소록도 한센인들에게 전쟁물자 생산을 위한 극한의 강제노동을 시켰다. “죽어도 내려놓고”라는 소록도 속담이 생겨났다. 선창 확장 공사 때 나르는 돌이 너무 무거워 내려놓으면 죽을 정도로 맞거나, 감금실에 갇혀 죽거나 불구가 되곤 했기에 돌이라도 내려놓고 편하게 죽겠다는 결기 어린 말이었다. 소록도 감금실은 한센인들 인권 탄압의 상징이었다.

차별과 편견에서 해방되지 못한 이들

1945년 8월15일 해방 때도, 한센인들에게만은 해방이 오지 않았다. 소록도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이들은 이웃뿐 아니라 가족과도 함께 살 수 없는 이방인이었다. 일제강점기는 물론이고, 해방 후에도 한센인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우리 일상에서 계속되었다. 한센병은 리팜피신 몇알로 치료되는 병이었지만, 외모에 남겨진 흔적처럼 한센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치유하지 못했다.

한센 보상청구 사건의 역사는 약 20년에 이른다. 소록도 한센인 126명은 2003년 말께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상청구서를 제출했다. 대만 낙생원 한센인 25명도 같이 제출했다. 한센인 보상청구 사건에서 소록도 한센인 두명이 소록도에서 벌어졌던 인권침해 현장을 생생히 증언했다. 소록도 생활 중 손이 모두 잘리고, 강제 단종 수술까지 당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일본 법정의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방청객 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2005년 10월25일 오전 10시 일본 도쿄지방재판소 두 재판부는 서로 엇갈린 판결을 했다. 소록도 한센인들은 패소했고, 대만 낙생원 한센인들은 승소했다. 판결 선고 뒤 서울 종묘에서 규탄 집회가 시작됐다. 전국에서 온 1000여명의 한센인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스스로 모였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한센인의 인권침해, 일본 정부 사죄하라. 일본 정부 사죄하고 즉각 보상하라” 등의 외침이 계속됐다. 일본에서도 일본 전국한센병환자협의회와 시민단체들은 차별적인 판결을 한 일본 도쿄재판부뿐 아니라, 보상을 거부하는 일본 정부를 규탄했다. 한센인 인권침해에 대해 일본 정부에 보상을 외치는 목소리는 한국에서도, 대만에서도, 일본에서도 같았다. 전례가 없던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일본 의회는 2006년 2월3일 한국에서 강제격리시설에 있었던 한센인과 대만의 한센인에 대해서 보상하는 내용으로 한센인보상법을 개정했다. 일본 의회는 법을 통과시키면서 ‘국외 한센병 요양소에 입소해 있었던 사람이 종전 이전에 입었던 정신적인 고통을 보상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 이후 10년 가까운 시간 한국 한센인권변호단은 소록도를 포함한 전국의 한센인 정착촌을 다니며 한센인의 가슴 아픈 역사를 진술서 형태로 기록했다. 한센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가족들로부터 마을 사람들로부터 추방됐던 이야기, 소록도에 강제로 끌려와 강제노역으로 죽고 싶었던 이야기, 자녀를 갖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강제단종·낙태에 관한 이야기, 주검조차 다시 해부되어야 했던 이야기였다. 한국 한센인권변호단이 듣고 기록한 진술서로 일본 한센인권변호단은 일본 정부를 설득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한국, 일본, 대만 3국 변호단은 국제심포지엄과 토론회를 열어 극복하려 했다. 이런 공동 노력으로 한국 한센인 590명이 일본 정부의 보상을 받는 결실을 이뤄냈다. 일제강점기에 한센인 강제격리 정책을 펼치며 한센인의 인권을 침해한 것에 대해, 일본 정부가 법으로 보상했다는 점에서 큰 성과를 거둔 셈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센 가족보상청구는 계속됐다. 일본 정부의 보상은 한국 정부가 2007년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 등에 관한 법률’(한센인사건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0년 한국 한센인권변호단은 해방 이후에 한센인에게 가해진 강제단종과 강제낙태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16년 대법원은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강제단종과 강제낙태는 자녀를 통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한센인의 천부인권을 침해하는 것이었다. 이 점에 착안하여 일본 한센인권변호단은 한센병 환자 강제격리 정책으로 그의 가족도 피해를 보았다는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또다시 일본 구마모토 지방법원은 응답했다. 2019년 6월28일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일본 의회는 즉각 일본 한센병가족보상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르면 1945년 8월15일 이전에 발병한 한센병력자의 가족(자녀, 형제자매 등)은 일본 정부의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2021년 4월 한국 한센 가족 130명 이상이 일본 후생노동성에 보상청구서를 제출했다. 현재 일본 정부는 청구인 10명에 대해서 보상 인정 결정을 했다.

국가 폭력에 사죄와 보상 이뤄져야

일본 정부의 보상 인정은 일제강점기 강제노동과 인권침해로 고통받았던 가족에게도 법으로 보상해주는 것이다. 과거 한센인에 대한 강제격리 정책이 국가의 불법행위였음을 인정하고 내국인·외국인을 구분하지 않고 법으로 보상해주는 것이어서 과거사 해결의 선례로 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성과는 한·일 한센인권변호단이 민간 영역에서 일제강점기에 벌어졌던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공동·연대 활동한 결과였다. 국적과 언어를 넘어서 보편적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추구하는 노력으로 가능했다. 과거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생각보다 더 넓고 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한센인에게 가해진 인권침해의 불법성을 확인하고 법으로 보상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려는 한·일 한센인권변호단의 노력은 민간 영역에서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 한센인권변호단 이정일 변호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