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26)씨는 1년 전부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일상 기록용 개인 블로그에 지난해 3월부터 특정 이용자가 반복해 들어왔다. ㄱ씨의 이름이나 친구 이름, 별명, 거주지 등 개인정보를 검색해 블로그로 찾아들었다. 그 이용자는 블로그 유아르엘(URL) 저장 등 쉬운 방법을 두고 보란 듯이 개인정보로 검색을 해댔다. ㄱ씨는 ‘온라인 스토킹으로 신고하겠다’는 공지를 띄우고, 대부분의 글을 비공개로 돌렸지만, 그의 방문은 계속되고 있다.
Q : 그렇다면 ㄱ씨는 스토킹 피해를 입었다고 특정 이용자를 고소할 수 있을까?
A : 아니오.
ㄱ씨는 지난 3월 온라인 스토킹 피해 신고를 하려 경찰을 찾았다. 그는 경찰로부터 “그 사람이 직접 찾아오거나 메시지를 보냈나요?”, “본인이 애초 공개로 글을 올린 거 아닌가요?” 등의 질문을 들어야 했다. ㄱ씨는 <한겨레>에 “그 사람이 내 데이터를 쌓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불안하다. 스토킹처벌법이 도입됐다는데 경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고 했다.
6달 전인 지난해 10월21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됐다. 그간 스토킹 범죄에 대한 인식도, 신고도 늘었지만 그만큼 법안의 구멍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온라인 스토킹’ 처벌에 스토킹처벌법은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스토킹처벌법은 온라인 스토킹을 처벌할 수 있는 길을 ‘일부’ 열어놓았을 뿐이다. 피해자가 보거나 듣고 싶어하지 않는 글·음향·이미지 등을 당사자와 가족에게 가해자가 ‘도달’하게 했을 경우다. ㄱ씨 사례처럼 무언가가 ‘도달’하지 않으면 스토킹처벌법은 소용없다. 전문가들은 “현행법은 온라인 스토킹 전체를 포괄하지 못한다”며 “법의 실효성을 높일 포괄 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직접 도달하지 않아도 피해 유발할 수 있어”
온라인 스토킹은 ‘도달 행위’ 유무로 규정하기 어렵다. 온라인에서는 상상하지 못한 다양한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가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스토킹처벌법 제정 1년 기념 토론회’에서 발표한 피해 사례를 보면, △인터넷 게시판에 피해자의 신상과 사진을 유포하는 경우 △익명 계정을 만들어 소셜미디어에 피해자의 사진과 모욕적인 글을 게시하는 경우 △피해자가 이용하는 웹페이지에 침입해 성폭력적인 메시지를 남기는 경우 △피해자인 척 가장해서 피해자의 지인들에게 채팅으로 접근한 뒤 허위 사실을 퍼뜨리는 경우 등 현실에서의 피해 유형은 다양했다. 신성연이 한사성 활동가는 “어떤 가해행위는 피해자에게 ‘직접 도달’하지 않으면서도 명백한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짚었다.
스토킹처벌법이 아닌 기존 법률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온라인상 개인정보 수집·이용·게시·유포 행위는 이미 정보통신망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에서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강소영 건국대 경찰학과 조교수는 지난해 12월 한국경찰학회보에 발표한 ‘스토킹처벌법상 구성요건의 적용 및 한계’ 논문에서 “악의적으로 수집한 타인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더라도 개인정보보호법 상의 신상정보 공개 행위로 처벌할 수 없고,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처벌의 공백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스토킹을 엄격하게 규정한 탓에 수사기관도 법률에 명시한 도달 행위가 없으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경찰청 형사국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과 관계자는 <한겨레>에 “도달 행위 없이 어떻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유발할 수 있나. (그런 일이 있다면) 정보통신망법 등 기존 법률로 규제할 수 있다”고 했다. ㄱ씨는 큰 사건으로 번질까 두려워 경찰을 찾았지만 “남자들은 관심 가는 사람이 있으면 멀리서 지켜볼 수도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신고 기록이라도 남겨달라고 요청했지만, 경찰은 직접 경찰서를 찾아간 ㄱ씨에게 “112로 전화해서 기록을 남겨라”는 조언만 했다.
서혜진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한겨레>에 “어떤 범죄로 번질지 모르는 게 스토킹 범죄”라며 “수사기관도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당사자가 스토킹으로 여기고 있다면 사안을 적극적으로 바라봐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스토킹처벌법의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혜진 변호사는 “온라인 스토킹은 처벌법이 있어도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대표적 영역”이라며 “‘도달 행위가 있어야 스토킹’이란 식의 열거 규정으로는 온라인 스토킹 전반을 규제하기 힘들다. ‘기타 외 스토킹에 준하는 행위’‘기타 외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 등과 같이 포괄 규정이 있어야 법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온라인 스토킹이 위험한 이유는 또 다른 범죄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온라인 스토킹에 대한 규제 강화는 디지털성범죄, 사이버불링 등 다른 범죄의 예방적 효과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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