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소년사법제도 개선 권고에 대해 이의제기 절차 마련 등에 한해 일부만 받아들였다. 인권위는 이에 ‘유감’을 표명하며 법무부에 전향적으로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입장을 냈다.
인권위는 26일 법무부가 인권위의 소년사법제도 개선 권고를 일부 수용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7월 인권위는 법무부 장관에게 △소년법의 우범소년(범죄나 비행을 저지를 우려가 있는 10살 이상의 소년) 규정 삭제 △소년과 성인의 분리수용원칙이 준수될 수 있도록 관련 규정 정비 △소년형사사건은 범죄수사절차 개시 시점부터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소년보호사건은 조사 시작 시점부터 국선보조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제도 도입 △임시조치에 대한 소년의 이의제기권 보장을 위한 제도 마련 등을 권고했다. 결론적으로 법무부는 이들 4가지 권고 사항 중 1개만 수용하고, 1개는 일부 수용했다. 나머지 2가지 권고는 수용하지 않았다.
우선 우범소년 규정을 삭제하라는 권고에 대해서 “우범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체계가 미흡한 상태에서 대안 없이 해당 규정을 삭제할 경우 소년비행을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우범소년 규정 연혁, 소년부 송치현황, 소년보호주의 이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회적 논의를 통해 충분한 검토를 거친 뒤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인권위에 회신했다. 원론적 입장 외에 구체적 이행계획에 대한 언급이 없어 사실상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법무부는 소년과 성인의 분리수용원칙 준수를 위한 규정을 정비하라는 권고에 대해서는 “소년 수용자를 혼거 수용하는 경우 의무적으로 성인 봉사원을 배치하도록 한 규정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지침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인권위는 “구체적인 계획이 언급돼 있지 않고, 미결수용자의 경우 연령 구분 없이 소년과 성인을 함께 구치소에 수용하는 것을 허용하는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등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아 권고를 수용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또 소년형사사건과 소년보호사건에서의 법적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강화하라는 권고에 대해서는 “인권위의 권고 취지를 반영해 소년형사사건 관련 내용이 포함된 형사 공공변호인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소년형사사건의 필요적 변호인 선정 대상자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년보호사건에 대해서는 “현행 국선보조인 제도로도 충분한 지원이 가능하다”고 회신해 인권위는 권고를 일부 수용한 것으로 판단했다.
법무부는 소년범의 이동에 제약을 가하는 임시조치에 대한 이의제기권을 보장하라는 권고에 대해서는 “소년의 이의제기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 마련에 대해서는 인권위의 권고 취지에 이견이 없으며, 국회에 관련 법안 발의를 검토하겠다”고 회신했고, 인권위는 권고를 수용한 것으로 판단했다. 소년법 18조에 따라 법원의 소년부 판사는 최종 처분을 내리기 전 사건 조사나 심리가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소년범을 보호자나 특정 시설 또는 소년분류심사원에 일정 기간 위탁하라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인권위는 “소년사법제도는 소년에 대한 처벌보다 보호가 본질이고, 따라서 발달과정에 있는 아동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범죄를 행한 아동의 회복과 사회 복귀 등 그 목적에 맞게 운영돼야 한다”며 “그러나 우리나라 소년사법제도는 우범소년 규정이 존재하고 소년과 성인의 혼거수용이 이루어지는 등 제도의 목적에 반해 적절한 아동보호가 제공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소년사법제도 개선에 대한 국내외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법무부가 인권위의 권고에 미온적 입장을 취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며 “앞으로 법무부가 더욱 전향적인 자세로 소년사법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