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일선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무죄가 확정됐다. ‘남의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으니 남용할 권한도 없다’는 논리로 무죄를 확정한 대법원 첫 판결이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8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임 전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는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하며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씨 ‘7시간 행적’에 관한 추측성 기사를 써 재판에 넘겨진 가토 다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을 받는다.
1심은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면서도 ‘재판에 개입할 직무상 권한이 없으니 남용할 직권도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도 “부당·부적절한 재판 관여 행위”라고 판단했지만 1심과 같은 논리로 무죄 판결했다. 대법원 역시 같은 무죄 판례를 세우면서, 하급심에서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는 전·현직 고위법관들에게 두루 적용될 경우 ‘만능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 수사팀은 “대법원은 사법행정권자가 재판에 개입해 법관의 재판 독립을 침해하더라도 법리상 이를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다른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 등 불법 재판 개입 사건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서울중앙지검장과 3차장검사로 있던 2018~19년 수사 및 기소가 이뤄졌다. 현재 양승태 전 대법원, 박병대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부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고자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4년째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가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손배소 재상고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낸 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 개입 관련 형사재판 등에서 특정 결론을 유도하고자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키거나 재판부 의중을 알아보는 등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고영한 전 대법관도 경기 평택시와 충남 당진시의 매립지 관할권 소송 선고시기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참여연대도 이날 성명을 통해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 5년이 되도록 누구하나 책임지고 반성하지 않고 있다. 사법농단이라는 헌법 유린 사태에도 여전히 제 식구 감싸기에만 급급하다. 국회는 법원행정처 폐지 등 중단된 법원개혁 논의를 조속히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0월 임 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를 각하했다. 이미 법관에서 사퇴했기 때문에 파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3명의 헌법재판관은 “사실상 법관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임 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은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이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면죄부를 주게 된다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을 용인하게 된다”며 탄핵심판 심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임 전 부장판사는 지난 1월 변호사 개업을 했다.
▶관련기사 :
재판 개입 임성근 탄핵심판 각하…헌재, 현직법관 아니라며 ‘면죄부’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17052.html
▶관련기사
: ‘재판 개입’ 위헌이지만 단죄 못한다는 법원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28342.html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