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를 지니지 않은 민원인이 흉기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자신을 진압한 경찰에게 맞대응했다면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오상용 부장판사는 지난달 29일 상해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민원인 이아무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3일 밝혔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서울의 한 경찰서 1층 민원실에서 경찰관에게 폭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았다. 이씨는 당시 서장 면담을 요구하며 경찰서를 찾았다. 이씨는 면담 내용을 묻는 경찰관의 질문에 대응하지 않고 손가락질을 하며 욕설을 뱉은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이씨는 한 손에는 우산을 다른 손에는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이씨가 경찰관과 이야기를 하던 도중 비닐봉지에 손을 가져가는 순간 경찰관이 이를 제압했다. 경찰관은 이씨가 ‘흉기를 꺼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경찰관이 민원인의 비닐봉지의 내용물을 확인하거나 개봉을 요구한 사실은 없었다. 경찰의 제압에 이씨는 경찰관의 얼굴을 가격하고 안경을 밟는 등 맞대응을 하다 경찰관 4명에 의해 제압됐다. 해당 경찰관은 2주 정도 치료가 필요한 부상을 입었고, 이씨는 공무집행방해죄로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씨의 행동이 정당방위라고 봤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피해자(경찰관)에 대응한 폭력은 행위가 매우 부적절하긴 하지만 피고인으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과잉 제압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피고인에게는 피해자에 대한 공무집행방해의 고의나 상해의 고의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피해자는 피고인이 들고 있던 비닐봉지가 의심스러우면 피고인과 대화를 할 때 개봉을 요구하거나 내용물을 확인해야 하지만 피해자는 피고인이 비닐봉지 안에서 위험한 물건을 꺼낼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한 후 피고인을 갑자기 수 미터 이상 밀쳐내는 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본청 주변에 많은 경찰관이 근무하고 있었고 피고인은 한 손에 우산과 비닐봉지를 함께 가지고 있었으므로 비닐봉지에서 위험한 물건을 꺼내기는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로 피고인의 손이 비닐봉지에 닿은 것으로 보이지 않아 피해자의 진술대로 급박한 상황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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