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남자에게 신장 줘도 사랑은 변함 없죠”
“떼어낸 한쪽 신장은 사랑으로 채울 거예요.”
태어나 한번도 마주친 적 없는 두 부부가 만성신부전증을 앓는 서로의 남편을 위해 신장을 맞교환하게 된다. 김혜정(45·여·충남 천안시 자가동)씨는 23일 조치행(49)씨에게, 설정순(44·여·광주 북구 중흥2동)씨는 24일 육상호(50)씨에게 각각 신장을 기증할 예정이다.
애초 김씨와 설씨는 자신의 남편에게 신장을 줄 생각이었다고 한다. “물 한 모금, 콩 하나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당장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죠.”
하지만 혈액형이 같았음에도 조직검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자, 두 사람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김씨의 남편은 2년 4개월 동안 혈액투석을 받으면서 직장도 그만뒀고, 설씨는 남편 대신 고기상자를 배달해야 했다.
설씨는 남편이 화장실조차 갈 수 없어 고통스러워할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고 했다. 뜨거운 사랑의 눈물조차 남편의 깡마른 몸을 녹여줄 수는 없었다. 8달 사이 몸무게는 88kg에서 55kg까지 곤두박질했다. 김씨의 남편 역시 “고통의 끝이 어디일까 두려울 정도였다”고 했다. 그들의 삶은 하루하루 마른 낙엽처럼 부스러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고통의 터널’을 지나던 두 부부에게 희망의 소식이 전해졌다. 새생명의료재단의 가족교환이식프로그램을 통해 김씨와 설씨의 신장이 상대방 남편에게 이식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며칠째 설씨와 김씨는 남편들과 잠시 ‘별거중’이다. 설씨는 삼성서울병원에서, 김씨는 강동성심병원에서 ‘외간 남자’와 나란히 수술실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두려움의 문턱’, 그 마지막에 서 있는 셈이다. 설씨와 김씨는 이구동성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남편에게 신장을 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생명의료재단 김경아씨는 “눈에 보이는 장애도 고통스럽지만, 신장장애는 보이지 않는 고통이 무척 크다”며 “앞으로 환자 가족들이 더 적극적으로 기증의사를 밝혀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재 신장이식을 기다리는 만성신부전증 환자는 전국적으로 2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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