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또…” 4년마다 가슴 두근두근
“이제 필화도 나이가 들어 은퇴했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계올림픽 개막식 때 북한 참가단 얼굴을 유심히 살폈죠.”
1971년 세계적인 북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한필화(65)씨와 애끓는 전화통화로 이산가족 아픔을 온 나라에 전한 한필성(72·경기 파주시 교하읍 동패리)씨가 토리노 동계올림픽을 맞은 심정은 남다르다. 8년 만에 북한이 참가한 겨울올림픽인데다, 1990년 동생을 만난 뒤 이제까지 목소리조차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1964년 스케이트서 은메달 딴 필화씨와
국민 울린 전화통화 이어 40년만에 상봉
“토리노에 왔을가 TV에서 눈 못떼” 1950년 홀로 고향인 평안남도 진남포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온 한씨가 북에 두고 온 여동생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열린 겨울올림픽에서 여동생 필화씨가 북한 대표로 출전해 여자 3천m 경기에서 은메달을 따낸 것이다. 이후 남매는 남북 정부의 주선으로 1971년 2월17일 서울~도쿄 국제전화를 통해 “오빠 오빠, 나야 나”, “필화야, 필화야”라는 애끊는 통화로 수많은 국민들을 울렸다. 하지만 그뿐, 상봉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그 뒤 국제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필화씨는 1990년 임원 자격으로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제2회 겨울 아시아경기대회에 참석했고, 남매는 40년 만에 일본 땅에서 만났다. 피난 이후 부산과 서울에서 전파상 일을 하며 어렵게 살아온 한씨는 1980년대 중반부터 경기도 고양에서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통일이 되면 당장 북으로 달려가기 위해 북녘땅을 지척에 둔 경기 파주시에 5500평 규모의 목장을 마련했는데, 목장 일도 성공한데다 일산 새도시가 개발되면서 목장 땅값이 치솟아 한씨는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어느새 일흔을 넘긴 한씨는 목장을 정리하고 노인복지회관에서 컴퓨터와 일본어를 배우며 여유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는 “나이가 드니까 집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자꾸 고향 생각이 난다”며 “특별한 일이 없어도 운동삼아 늘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지낸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한씨는 나이에 비해 10년은 젊고 기운 있어 보인다.
한씨가 마지막으로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소식을 들은 것은 3년 전이었다. 미국 친구를 통해 어머니 최원화씨와 누나인 필희, 필녀, 남동생 필환까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이제 남은 혈육이라곤 여동생 필옥(67)씨와 필화씨 뿐이다.
한씨는 “예전에 우리 남매 사연이 방송에 소개되면서 얼굴이 많이 알려져 길 가다가도 알아보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며 “사람들 기억에서 가물가물 사라지듯, 더 늙기 전에 고향 가 동생들 한번 만나봤으면…”하고 말끝을 흐렸다. 글·사진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국민 울린 전화통화 이어 40년만에 상봉
“토리노에 왔을가 TV에서 눈 못떼” 1950년 홀로 고향인 평안남도 진남포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온 한씨가 북에 두고 온 여동생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열린 겨울올림픽에서 여동생 필화씨가 북한 대표로 출전해 여자 3천m 경기에서 은메달을 따낸 것이다. 이후 남매는 남북 정부의 주선으로 1971년 2월17일 서울~도쿄 국제전화를 통해 “오빠 오빠, 나야 나”, “필화야, 필화야”라는 애끊는 통화로 수많은 국민들을 울렸다. 하지만 그뿐, 상봉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그 뒤 국제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필화씨는 1990년 임원 자격으로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제2회 겨울 아시아경기대회에 참석했고, 남매는 40년 만에 일본 땅에서 만났다. 피난 이후 부산과 서울에서 전파상 일을 하며 어렵게 살아온 한씨는 1980년대 중반부터 경기도 고양에서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통일이 되면 당장 북으로 달려가기 위해 북녘땅을 지척에 둔 경기 파주시에 5500평 규모의 목장을 마련했는데, 목장 일도 성공한데다 일산 새도시가 개발되면서 목장 땅값이 치솟아 한씨는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한씨는 “예전에 우리 남매 사연이 방송에 소개되면서 얼굴이 많이 알려져 길 가다가도 알아보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며 “사람들 기억에서 가물가물 사라지듯, 더 늙기 전에 고향 가 동생들 한번 만나봤으면…”하고 말끝을 흐렸다. 글·사진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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