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 영장에 거주지 주소가 잘못 기재된 경우 형식적으로나마 피의자 동의를 받고 실거주지를 압수수색했다면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압수수색 영장에 거주지 주소가 잘못 기재돼 있어도 형식적으로나마 피의자 동의를 받고 실거주지를 압수수색했다면 위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경찰 수사를 받았던 ㄱ씨가 경찰관 ㄴ씨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9일 밝혔다.
서울 강남구 한 이비인후과 병원을 운영하는 ㄱ씨는 보험사기 등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됐다. 서초경찰서 소속 경찰관 ㄴ씨는 ㄱ씨 병원과 거주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 2014년 8월 집행했다. 그런데 ㄱ씨가 거주하는 곳은 ㄴ씨가 영장을 발부받은 주민등록상 거주지와 다른 곳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ㄴ씨는 병원을 압수수색하다가, ㄱ씨에게 실제 거주지 압수수색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다만 ㄱ씨의 동의가 있을 때에만 실제 거주지에 대한 압수수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지는 않았다. ㄱ씨가 협조 의사를 밝히고 실제 거주지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또 영장 기재 사실과 달리 보험회사 직원들이 압수수색에 참여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압수수색 영장에는 ‘금융감독원 주관 팀’ 소속 직원 3명이 참여한다고 기재돼 있었는데, 사실 이들은 모두 보험회사 직원이었다. 그중 경찰관 출신 보험회사 직원 ㄷ씨는 병원 압수수색에 동행해 병원 직원을 상대로 보험사기 혐의에 대한 진술서를 작성하게 하기도 했다. ㄷ씨는 그뒤 공무원자격사칭 혐의로 재판을 받아 벌금 300만원을 확정받았다.
수사를 받던 ㄱ씨는 결국 2016년 검찰에 의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이어 ㄴ씨 등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보험회사 직원들을 금감원 직원처럼 기재해 판사와 검사를 기망했고, 영장에 기재된 주소와 다른 곳을 압수수색해 주거를 침입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ㄱ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은 ‘영장에 기재된 주소와 압수수색 장소가 다른 점’에 대해 “ㄱ씨의 실제 거주지에 대한 압수수색을 집행하게 한 것은 ㄱ씨 동의 하에 이뤄진 일로 봄이 상당하다”고 봤다. ‘ㄷ씨 등 참여’에 대해서도 “ㄷ씨 등을 영장 집행에 참여하게 한 것은 상당히 부적절하다”면서도 “ㄴ씨가 주도적으로 집행하며 ㄷ씨 등이 보조해, 영장 집행이 위법하다고까지 판단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 판단도 같았다. ‘영장 내 주소가 다른 점’에 대해 대법원은 “ㄱ씨 실제 거주지에 대한 압수수색이 ㄱ씨 자발적 동의를 거친 적법한 절차에 의한 것인지는 부정적으로 볼 여지가 있다”면서도 “주소가 잘못 기재됐을 뿐인 상황에서 ㄴ씨가 형식적으로나마 ㄱ씨 동의를 받고 압수수색을 했다면 고의 또는 중과실로 직무상 의무 위반 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나머지 청구 내용에 대해서도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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