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종합병원 인근에 즐비하게 늘어선 ‘문전약국’들이 공동으로 도우미를 고용해 환자들을 차례로 약국으로 안내한 행위는 약사법이 금지하고 있는 호객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12일 약사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ㄱ씨 등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인근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ㄱ씨 등은 용역회사를 통해 공동으로 도우미들을 고용해 병원에서 나오는 환자들에게 접근해 미리 정해진 순번에 따라 약국을 안내하면서 차량 이송 등 편의를 제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약사법은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 약국의 명칭 등으로 소비자를 유인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1심은 ㄱ씨 등에게 50만원 벌금형을 선고유예했다. 약사법 위반 혐의는 인정하되, 죄가 경미한 경우 일정 기간 동안 형 선고를 보류하고 문제 없이 기간이 지나면 유죄 판결 자체를 면하게 하는 판결이다. 그러나 2심은 ㄱ씨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문전약국의 호객행위에 대한 민원이 계속 나오고 직원끼리 폭언을 하는 일도 생기자 분쟁 해소 차원에서 약국들끼리 회의를 열어 공동 도우미를 고용하기로 한 점을 감안한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공동 도우미 제도는 ㄱ씨 등이 의약품 판매질서를 확립하고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한 것”이라며 “공동 도우미 제도를 통해 약국을 안내하는 것이 환자들의 약국 선택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분쟁 해소 차원에서 공동 도우미를 고용한 점은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약사법 위반 행위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기존 분쟁이나 갈등을 낮추려는 의도에서 공동 도우미를 고용하게 된 경위를 감안해도 약국을 정하지 않은 환자들에게 접근해 자신들이 속한 순번 약국으로 안내하면서 편의 차량을 제공한 행위는 환자들의 약국 선택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들 행위를 “공동 호객행위”라고 보며 “편의 차량 제공도 환자들 선택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어 의약품 시장질서를 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원심을 파기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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