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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고양이에게 휘두른 폭력, ‘맞아야 동물학대’일까요?

등록 2022-05-18 14:00수정 2022-05-19 02:46

가장 보통의 재판
길고양이 위협 ㄱ씨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 기소
“오리알 훔치고 강아지에 덤벼서” 항변했지만…
길고양이들이 도림천 인근에서 주민들이 챙겨준 사료를 먹고 있다. 독자 제공
길고양이들이 도림천 인근에서 주민들이 챙겨준 사료를 먹고 있다. 독자 제공

우리 법정에는 창이 없다. 환한 빛이 드는 법정은 영화와 드라마에만 존재한다. 외부와 차단된 이 공간에서 매일 수많은 이들의 한숨과 환호가 교차한다. 몇 줄 판결문에 평탄했던 삶이 크게 출렁이기도 하고, 스스로 어쩌지 못했던 누군가의 삶은 전환점을 맞기도 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재판은 우리 이웃을 한 뼘 더 이해할 수 있는 가늠자다. 평범한 이들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 작은 창을 내려는 이유다.

지난해 11월 ㄱ(57)씨가 서울중앙지법 법정에 섰다. 그의 혐의는 동물보호법 위반. 가만히 있는 길고양이를 때리려고 하는 등 학대했다는 혐의다. ㄱ씨 쪽은 혐의를 적극 부인했다. 고양이를 직접 때리거나 상처를 입히지 않았기 때문에 동물학대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였다.

사건은 지난해 6월29일에 벌어졌다. 이날 밤 9시50분께 ㄱ씨는 술에 취한 채 서울 관악구 도림천 산책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당시 ‘통통이’(3~4살 추정)는 길고양이 대피소 앞 벤치에서 동네 주민들이 챙겨준 밥을 먹고 있었다. ㄱ씨는 통통이를 향해 들고 있던 우산을 휘둘렀고, 놀란 통통이는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 달아나는 고양이를 쫓아가 대피소를 우산으로 두 차례 친 ㄱ씨는 대피소 밖으로 도망치는 통통이를 다시 뒤쫓았다. 주변 사람들이 ㄱ씨를 막아서면서 통통이가 ㄱ씨에게 직접 맞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ㄱ씨를 경찰에 신고해 결국 재판에 넘겨지게 됐다.

도림천의 길고양이 ‘통통이’. 독자 제공
도림천의 길고양이 ‘통통이’. 독자 제공

재판에 나선 ㄱ씨는 고양이를 향해 우산을 휘둘렀다는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목격한 동네 캣맘 ㄴ씨가 지난 1월 증인으로 나와 ‘ㄱ씨가 고양이를 때리려 했다’고 거듭 증언했다. 길고양이를 돌본 지 6~7년 됐다는 ㄴ씨는 사건이 벌어진 날짜와 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ㄴ씨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데 아저씨(피고인)가 ‘밥 주지 말라’고 했다. 그날 비가 왔는데, 우산으로 애(통통이)를 치려고 해서 고양이가 도망갔다”, “(ㄱ씨가 고양이 대피소에서) 고양이를 치려고 하니 젊은 청년들이 ‘때리지 말라’고 막아섰다”며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다만 ㄴ씨는 ㄱ씨가 벤치나 대피소를 우산으로 치는 장면은 봤어도 고양이를 직접 때리는 건 보지 못했다고 했다. 검찰의 공소사실도 “밥을 먹고 있는 길고양이를 아무 이유 없이 때리려 하고, 달아나는 고양이를 쫓아가 폭행하려 했다”에 그쳤다.

고양이를 ‘때리려고 위협한’ 것도 동물학대가 될 수 있을지가 쟁점이 된 이 사건에서, ㄱ씨 쪽은 고양이를 때렸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죄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ㄱ씨에게 적용된 동물보호법 8조 2항 4호는 “정당한 사유 없이 (동물에)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학대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ㄱ씨의 변호인은 최후 진술에서 “공소사실 기재에도 고양이를 직접 때렸다고 되어 있지 않고 증거기록에도 피고인이 도구를 사용해 고양이에게 상해를 입혔음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ㄱ씨도 “고양이를 해하려 한 건 아니”란 취지로 항변했다. “고양이가 벤치에 있다가 불법 시설물로 보이는 데로 들어가길래 ‘이게 뭐야’ 하면서 우산으로 톡톡 친 겁니다. 고양이를 아끼는 마음은 압니다. 그런데 제가 산책하다 보면 고양이가 오리알을 훔치기도 하고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덤비는 모습도 반복적으로 보였습니다. 동물을 해하려고 한 건 없습니다.” ㄱ씨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벌금 50만원을 구형했다.

1심은 ㄱ씨의 행위를 “동물학대”로 보고 지난 11일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고양이를 때린 사실이 없으며 고양이가 도망가지도 않았다’며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목격자 진술과 피고인의 일부 진술에 비춰보면 피고인의 공소사실은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고 했다. 동물을 위협하는 행위도 동물학대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권유림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대표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고양이에게 상해 결과가 초래되지 않았고 물리적 접촉이 있었던 게 아니었는데, 재판부에서 몸에 닿은 것과 동일하게 판단한 것 같다. 위협에 불과한 행위에 대해서도 (동물학대라고) 판단한 진보적 판결”이라고 말했다. ㄱ씨는 판결에 불복해 선고 당일 항소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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