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해외 입국자에 대한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완화한 이후 해외여행 수요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백신접종을 완료한 보호자와 함께 입국할 때 격리가 면제되는 미접종 어린이의 연령 기준이 만 6세 미만에서 만 12세 미만으로 상향되자 가족여행 수요가 크게 늘었다. 사진은 29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의 모습. 인천공항/연합뉴스
“이 가격 주고 차마 비행기표 못 끊겠더라고요. 대신 이번 여름 바짝 허리띠 조여서 올겨울에 아껴뒀던 연차와 휴가 비용을 한 번에 쓸 계획이에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임아무개(30)씨는 최근 11월에 출발하는 멕시코시티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임씨는 “거리두기가 풀리고 거의 매일 국제선 비행기표를 검색했는데, 여름엔 목적지가 어디든 비행기표 가격이 올라도 너무 올랐더라. 고민하다 이번 여름은 연차와 돈 모두 아끼면서 집에서 보내고 대신 겨울에 한방에 몰아서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해외여행 수요가 급증하면서 비행기표 가격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국제선 노선은 아직 정상화되지 않은 데다 유류할증료 등 요금 인상 요인도 많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꿈꿔온 해외여행을 이번 여름 휴가엔 유보하고 겨울 여행 계획을 세우는 20·30대 직장인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31일 항공요금 가격을 살펴보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보다 3배 안팎으로 뛰었다. 대한항공 국제선 운임표와 포털사이트 항공권 가격 검색 등을 보면, 인천~도쿄(하네다) 노선의 1인 이코노미석 왕복 항공권(직항 기준) 가격은 2019년 6월 20만원 안팎이었지만 올해 6월1일 기준 49만~83만원 내외로 형성돼 있다. 여름 휴가지로 인기가 많은 인천~다낭 노선의 경우 3년 전 25만~35만원에서 현재는 70만~100만원 선이다. 인천~뉴욕 노선 항공권은 2019년 120만원 내외에서 현재 200만~500만원 안팎이다.
화장품 제조업체에 다니는 권아무개(30)씨도 비싼 비행기표 가격에 겨울 해외여행을 고민 중이다. 권씨는 “지금 다니는 회사가 제조업이라 여름 휴가 기간 강제로 소진해야 하는 연차가 있는데, 요즘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서 어디 놀러 가기가 겁이 난다. 국제선 비행기표 가격이 거의 두배 가까이 오른 것을 보고 비수기인 11월이나 아예 한겨울에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거리두기 풀린 기념으로 일단 해외 어디든 나가긴 할 것”이라고 했다. 직장인 석아무개(28)씨도 “미국 뉴욕을 가고 싶어서 비행기표 가격을 알아봤는데 너무 비싸더라. 일단 이번 여름은 경기도나 강원도 쪽으로 짧게 다녀온 뒤 겨울에 일본이나 동남아시아로 떠날 것”이라고 했다.
권씨나 석씨처럼 미리 ‘겨울 비행기’를 점찍는 이들은 많다. 하나투어 조일상 홍보팀장은 “이미 겨울 항공권을 예약하려고 해도 낮은 요금은 거의 다 소진된 상태다”고 전했다.
당분간 항공요금 ‘고공행진’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6일 방역당국과 국토교통부는 연말까지 국제선 운항 규모를 2019년의 50% 수준까지 회복하는 ‘국제선 단계적 일상 회복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국제선 수요가 급격히 증가한 반면, 국제선 운항 공급은 여전히 코로나 이전의 20% 수준에 그치면서 항공 운임 상승으로 연결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인상된 유류할증료도 항공요금 상승을 압박한다. 대한항공 홍보팀 박준엽 부장은 <한겨레>에 “현재 국제선 운항 공급은 코로나19 사태 전의 20~30% 수준으로, 여전히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치고 있다. 코로나19 재유행 상황과 방역당국 정책에 따라올 겨울 비행기표 가격이 안정될지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조일상 팀장도 “앞으로 30% 노선 공급이 더 늘어날 텐데, 공급이 언제 늘어나느냐에 따라 가격 등락폭이 결정될 것 같다”고 했다.
항공요금의 ‘일상 회복’ 전망이 불투명하다 보니 비싸도 여행을 결단하거나 아예 여행을 포기하는 등 직장인들의 선택이 엇갈리기도 한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스페인행 비행기표를 취소해야 했던 직장인 서아무개(31)씨는 “이번 여름에는 ‘비행기표가 비싸더라도 무조건 나간다’는 생각으로 6월 말에 출발하는 베트남 다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라고 했다. 5년 차 직장인 김혜련(30)씨는 “비행기표도 비싸고 물가 부담 때문에 당장 여행 갈 생각이 없다. 거리두기가 풀린 뒤 재택근무가 끝났는데, 밖에서 쓰는 한 달 밥, 커피값이 장난이 아니다. 이번 여름에는 그냥 집에만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29일 김포공항 국제선 출국장에서 휴대용 포켓 와이파이 업체 관계자가 영업 준비를 하고 있다. 김포-하네다 노선은 한국과 일본 간 협의가 진행 중이며 6월 중으로 운항이 재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천공항/연합뉴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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