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계열사인 서울피엠시(PMC·옛 종로학원)가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동생 ㄱ씨가 낸 회계장부 열람 청구 소송에서 사실상 패소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ㄱ씨가 서울피엠시를 상대로 낸 회계장부와 서류의 열람 및 등사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1일 밝혔다.
ㄱ씨는 서울피엠시 대주주(약 73.04%)인 정 부회장의 동생으로 서울피엠시의 지분을 17.7% 정도 보유하고 있다. ㄱ씨는 정 부회장을 포함한 경영진의 부적절한 자금 집행 등 경영 실태와 법령 위반 여부 등을 파악하고 책임을 추궁한다며 2016년 회계장부 등 서류 열람과 등사를 요청했으나 서울피엠시가 이를 거부해 소송에 나서게 됐다. 앞서 ㄱ씨는 2019년 8월 정 부회장의 ‘갑질’을 막아달라며 청와대 국민 청원을 올린 일도 있다. 종로학원의 정경진 설립자가 장남인 정 부회장에게 서울피엠시를 물려주는 과정에서 벌어진 남매 사이 분쟁이 사태의 발단으로 알려져 있다.
1심은 ㄱ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추상적 의혹만으로 열람 및 등사를 허용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소수주주가 회계장부 등 열람이나 등사 청구를 할 때 청구이유 주장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 정도로 이유가 기재돼야 하는데, ㄱ씨 주장이 사실이라고 볼만한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2016년부터 ㄱ씨에게 배당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 자체가 ㄱ씨가 주장하는 임원진의 부정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이 판단 근거가 됐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주주가 제출하는 회계장부와 서류 열람 및 등사청구서에 붙인 이유에는 청구 경위와 행사 목적 등이 구체적으로 기재되면 충분하지, 그 이유가 사실일지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이 생기게 할 정도로 기재할 필요는 없다고 봤다. 주주에게 과중한 의무를 요구할 경우 열람·등사청구권을 부여한 상법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이유에서다. 오히려 기업이 주주의 열람·등사청구가 허위사실에 근거했다는 등의 사정을 주장·증명해야 한다고도 판단했다. 입증책임을 전환해 주주의 열람·등사청구권을 폭넓게 보장하는 취지의 판결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회계 장부와 서류의 열람·등사 청구시 경위와 행사 목적을 주주가 구체적으로 기재하면 충분하고 거부 사유에 관한 증명은 회사가 해야 한다는 대법원 최초 판단”이라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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