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전 대전 자운대 쇼핑타운 계산대가 붐비고 있다. 이곳은 국방부 국군복지단 산하 군 마트로, 국방부가 최근 이용 대상을 지역 주민으로 확대하고 초저가로 상품을 판매해 주변 소상공인들이 폐업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10일 오전에 찾은 자운대 쇼핑타운 매장은 장을 보러 온 군인 가족과 인근 지역 주민들로 붐볐다. 자운대는 대전 유성구에 자리잡은 국군 군사교육·훈련시설이다. 계산대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40대 여성은 “싸다는 소문 듣고 지난달부터 매주 온다. 모든 물건들이 시중의 반값이다. 카트가 없어 장을 못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자운대 쇼핑타운은 국방부 국군복지단이 운영한다. 군인복지기본법과 국군복지단설치법에 따라 군인과 그 가족 등의 복지증진을 위해 설치한 ‘군 마트’다. 국방부는 지난 1월부터 4월 사이 경남 창원·진해, 경기 평택, 강원 춘천, 전남 장성 등 대규모 군 시설이 위치한 6곳의 군 마트를 소재지 주민에게 개방했다. 대전시민들이 자운대 쇼핑타운을 맘껏 이용하게 된 배경이다. 충남 계룡에 있는 3군 통합기지 계룡대의 군 마트도 조만간 이용 대상을 지역 주민들로 확대한다.
자운대 쇼핑타운에선 주류·장류·유제품·건강식품·농수산물·과자·음료·냉동식품 같은 모든 소비재 품목을 판매한다. 일반 슈퍼마켓과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은 판매가격이 일반 슈퍼마켓의 30~90% 수준으로 저렴하다는 점. 일반 마트에서 병당 2750원인 소주 한병이 1470원, 1만50원인 6개 묶음 캔맥주가 4200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한 판매원은 “홍삼류 등 위탁판매 제품은 피엑스(PX·군인 매점) 가격에 팔고 있다”고 말했다. 군 마트 취급 물품이 일반 매장보다 저렴한 건 제조업체와 직접 물품 공급 계약을 체결해 중간 유통마진을 없애고 가격 할인율 입찰제를 시행해 납품 단가를 큰 폭으로 낮췄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지난 10일 오전 대전 자운대 쇼핑타운에서 한 이용자가 맥주를 사고 있다. 이곳에서는 ㅌ맥주 캔 355㎖ 6개 한 묶음이 4200원으로 시중가 1만50원보다 5850원 저렴했다.
문제는 군 마트가 싸다는 게 알려져 인근 주민들이 몰려들면서 지역 슈퍼마켓은 매출이 급감했다는 사실이다. 자운대 쇼핑타운에서 직선거리로 4㎞ 남짓 떨어진 유성구 신성동의 ㄹ슈퍼마켓 주인은 <한겨레>와 만나 “자운대 쇼핑타운이 민간에 개방된 지난 4월부터 하루 매출이 평균 250만~300만원에서 120만~130만원으로 뚝 떨어졌다”며 “가격 경쟁을 할 수 없어 시청과 구청, 국방부에 민원을 냈지만 감감무소식”이라고 말했다. 직선거리로 약 7㎞ 밖에 있는 유성구 온천동의 한 슈퍼마켓은 아예 주류를 판매하지 않고 있었다. 주인 김아무개(64)씨는 “어지간한 주류 도매점보다 자운대 술값이 싸다. 그렇다 보니 노래방이나 식당 업주들이 자운대에서 술을 사서 영업하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했다. 서구 도마동 ㄱ슈퍼마켓 신아무개 대표는 “우리 마트와 자운대는 승용차로 30여분 거리인데도 매출에 영향이 있다. 주말에 차 몰고 자운대로 가면 반값에 장을 보는데 누가 여기서 사겠느냐”고 되물었다.
지역 소매상들의 반발이 커지자 대전 유성구청은 국방부 국군복지단에 민원을 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지난 1월 국방부가 국군복지단에 보낸 ‘쇼핑타운 이용대상 확대 추진계획 검토결과 하달’이란 공문 한장이었다. 신하철 유성구 일자리정책실장은 “국방부는 훈령 등을 근거로 군 마트를 일반인에게 개방했다고 하는데, 군 마트는 행정기관의 권한이 미치는 범위 밖이어서 우리가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대전 자운대 쇼핑타운 입구에서 직원이 신분증 검사를 하려고 대기하고 있다. 이곳은 지난 4월부터 대전시민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국방부가 군 마트 이용 대상을 확대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2년 4월 경기·강원지역 소상공인들이 낸 ‘군 영외마트의 부당운영에 대한 이의’ 민원에 대해 “군 마트의 운용목적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군 마트의 이용을 제한하는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결한 바 있다. 당시 지역 상인들은 “영외마트는 군인복지기본법에 근거해 군인 및 군인가족 등의 복지증진을 위해 시중보다 싼 군납 계약에 따라 상품을 판매하는데, 일반인이 이용하도록 함으로써 인근 소상공인들이 피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거 국방부 복지단에서 근무한 예비역 영관장교는 <한겨레>에 “(권익위 의결 뒤인) 2014년 국방부 복지심의위원회가 국군복지단설치법을 개정하면서 ‘군 마트를 민간에 개방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는데, 이는 슈퍼나 편의점이 없는 전방부대 주변 민간인을 위한 편의 제공 차원이었다”고 말했다. 권익위의 권고를 이행하기보단 법적 구멍을 막는 데 급급했다는 뜻이다. 이광진 대전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군 마트 개방으로 지역 소상공인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어 대전세종슈퍼마켓협동조합 등과 긴급하게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조만간 군 마트 이용 대상 확대 조처 취소를 국방부에 요구할 계획이다.
〈한겨레〉는 군 마트 민간 개방과 관련해 국방부 국군복지단 쇼핑몰관리과, 복지정책과 등에 지난 10일부터 13일 오전까지 여러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13일 통화한 국방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답변하는 데 3~7일 정도 기간이 걸린다”고 전해왔다.
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