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의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가 경찰국 설치를 행안부에 권고하기로 하면서, 기존 경찰 견제 기구인 국가경찰위원회가 유명무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실상 윤석열 정부가 행안부를 통한 경찰 통제를 추진하는 셈이라 경찰 내 반발 움직임도 인다. 경찰위원회의 권한·위상 강화인 ‘경찰위원회 실질화’를 추진할 수 있었던 전 정권이 실기해 논란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일지만, 차라리 이를 계기 삼아 경찰위원회 실질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했던 ‘경찰위원회 실질화’는 지난 정부에서 세차례의 기회가 있었으나 사실상 방치됐다.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권력기관 개혁 중 하나로 ‘2017년부터 경찰위원회 실질화를 통한 민주적 통제 강화’를 발표하며 경찰 통제 방향을 공식화했다. 경찰위원회의 중립·독립성 강화를 통해 경찰을 통제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경찰위원회는 1991년 경찰법 제정으로 경찰청이 행안부 외청으로 분리된 뒤 30년 넘게 경찰 견제 기구였지만, 행안부 소속이라는 구조적 한계와 실질적인 권한 부족으로 제대로 된 견제 기능을 못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같은 해 11월, 경찰개혁위원회는 국가경찰위원회 실질화의 밑그림을 그렸다. 경찰위원회 지위를 기존 행안부 소속 자문위원회에서 국무총리 소속 ‘합의제 중앙행정기관’으로 격상하고, 대통령이 임명했던 위원들에 대해 행정·입법·사법부에 3명씩 추천권을 부여해 위원회의 중립·독립성을 꾀했다. 또 위원회에 인사·감찰요구권을 부여해 경찰의 민주적 통제 기구로서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담아 권고했다. 당시 경찰청은 개혁위 권고안을 수용하고 이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의 노력은 사실상 여기까지였다. 이후 국회는 경찰위원회 설치·운영의 근거인 경찰법을 세차례(2018년 4월, 2020년 12월, 2021년 3월) 개정했으나, 경찰위원회 실질화에 대한 진전은 없었다. 특히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자치경찰 도입’과 ‘국가수사본부 설치’라는 큰 변화를 담은 2020년 법 개정 때 경찰위원회 실질화 방안을 전혀 포함시키지 않았다. 경찰이 1차 수사 종결권을 갖게 되면서 권한이 늘어난 만큼 이를 통제하는 경찰위원회의 역할도 바뀌어야 하는데 이를 그대로 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경찰위원회 실질화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참여연대는 지난해 7월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 국정과제를 평가하면서 “경찰위원회 실질화는 청와대와 여당이 과제 이행을 포기한, 사실상 폐기한 국정과제”라며 “대통령의 의지로 가능한 개혁과제였다”고 평했다. 경찰 내부 평가도 유사하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위원회 실질화는 전체 정부 조직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청와대의 의지 없이 경찰청이 단독으로 움직이기 어려웠다”며 “개혁위 권고는 외부위원들의 권고일 뿐, 정권의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개혁은 표류했고 그사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다. 새 정부는 그 틈을 노렸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지난달 취임하자마자 경찰권 견제 방안을 마련하라는 ‘1호 지시’를 내렸다. 이에 한달간 운영된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는 다음주께 경찰국(치안정책국) 조직 직제화 및 고위직 인사 추천위원회 구성 등 행안부에 권고한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국가경찰위원회가 경찰 예산 편성과 인사 기준 등을 비롯해 주요 정책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라는 점에서 자문위원회가 구상한 행안부 경찰국과 역할이 부딪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경찰 내 반발이 나오고 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지난달 30일 “경찰권에 대한 통제뿐 아니라 경찰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고자 했던 1991년 경찰법 제정 정신이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며 사실상 행안부 직할 통제에 반대 뜻을 밝혔다. 최근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서도 지역별로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움직임 등이 나타나고 있다.
경찰 내부 반발이 거세지면서 정부도 경찰위원회 실질화 추진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자문위원회는 장기과제 형태로 ‘대통령 직속 경찰개혁위원회’ 설치를 권고하기로 했다. 자문위 관계자는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선 대통령 직속 위원회에서 각계 전문가 등이 참여해 논의해야 정당성이 실릴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경찰개혁위에 참여했던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위원회 실질화는 통치권자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지만, 역대 모든 정권에서 경찰의 중립성·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에 주저한 것이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행안부의 경찰국 부활 시도는 시계를 20~30년 거꾸로 돌리는 만큼 시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안이라 지금이 경찰위 실질화 방안 논의하기에 적기”라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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