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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인혁당 피해자 ‘빚고문’ 정부, 법원 화해권고 수용

등록 2022-06-20 14:16수정 2022-06-21 02:40

줬다 뺏는 배상금 지연이자 10억원 탕감하고
과지급된 5억여원 배상시 자택 경매 취하키로
한 장관 취임 뒤 ‘이의 제기’하더니 태도 급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영향 미쳤나’ 관측도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씨. 지난 2017년 2월에 난 부동산 경매 개시 결정에 따라 경기도 양평의 이씨 자택이 경매에 부쳐져 소송을 제기했지만 국정원은 법원의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씨. 지난 2017년 2월에 난 부동산 경매 개시 결정에 따라 경기도 양평의 이씨 자택이 경매에 부쳐져 소송을 제기했지만 국정원은 법원의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피해자들이 정부의 ‘빚고문 소송’에서 벗어날 길이 열렸다. 정부가 법원의 화해권고안을 받아들여 과지급된 국가배상금 5억원 남짓만 받고 소송을 마무리하기로 한 것이다.

법무부는 소송 수행자인 국가정보원의 의견을 받아들여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 선생의 국가배상금과 관련해 법원이 제시한 화해권고결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20일 밝혔다. 법무부는 한동훈 장관 취임 이튿날인 지난달 18일 법원에 화해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이의신청을 했는데, 이를 한달여 만에 철회한다는 뜻이다.

당시 법원은 이 선생이 국가에 반환해야 하는 배상금(5억여원)과 지연이자(10억여원) 가운데 △초과지급된 배상금 5억여원만 분할상환하고 △지연이자 10억원은 면제하며 △정부가 신청했던 이 선생 집에 대한 강제경매 절차도 종결하는 내용으로 화해권고결정을 한 바 있다. 정부는 이창복 선생과 비슷한 상황에서 또 다른 ‘빚고문’ 재판을 받는 피해자에 대해서도 같은 조처를 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이 선생의 빚고문 사건은 5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4년 인혁당 사건으로 8년간 감옥살이를 했던 이 선생은 2008년 1월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듬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1·2심에서 모두 이기면서 배상금과 이자 상당액의 3분의2인 10억9천만원을 가집행으로 먼저 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이 2011년 “배상금이 과다 책정됐다”며 지연손해금 발생 시점을 불법행위가 발생한 시점이 아닌 손해배상 소송 변론 종결일로 바꿈에 따라 이씨가 받아야 할 34년치 이자가 사라졌다. 배상금 규모가 쪼그라들면서 가지급금 10억9천만원 가운데 5억여원(초과지급분)을 반환해야 할 처지에 몰린 것이다. 정부는 대법원의 판례 변경에 따라 2013년 피해자들에게 반환 소송을 냈다. 이에 반발한 피해자들이 정부와 소송전을 벌이는 동안, 다시 이자가 눈덩이처럼(2022년 5월말 기준 9억6천만원) 불었다. 10억9천만원 가지급했다가 15억원 빼앗는 빚고문이 10년 가까이 진행된 것이다.

법무부는 이날 “국가배상금 가지급 이후 판례 변경이라는 이례적 사정으로 이른바 ‘줬다 뺏는’ 과정이 생겼고, 이를 방치하면 해당 국민이 억울해지는 사정이 생겼다”며 “상식과 정의의 관점에서 국민의 억울함을 해소하려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도 “인권침해 등 잘못된 과거사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피해자를 위로한다는 측면에서 선제적으로 대안과 해결 방법을 찾았다”며 “앞으로 국정원은 오늘 관계기관의 결정에 따른 후속 조치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법무부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는 대통령실 지침에 의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법조계 안팎에서 나온다. 앞서 법무부와 국정원 등 유관기관은 문재인 정부 당시부터 빚고문 소송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를 지속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을 잘 아는 법조계 인사에 따르면, 당시 법무부와 국정원은 법원의 화해권고결정을 받아들이는 데 사실상 합의 단계에 이렀다고 한다. 그러나 법무부는 한 장관 취임 이튿날인 지난달 18일 법원의 화해권고결정 이의제기 시한을 몇시간 앞두고 권고안을 거부한 바 있다. 당시엔 끝까지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한 장관이, 대통령실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정보공개소송에 대한 항소를 취하하는 등 정부 관련 소송을 전면 재검토하겠단 뜻을 밝힌 뒤 입장을 바꾼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정보공개소송과는 다른 판단 과정을 거쳐 화해권고안 수용이 결정됐다. 구체적 소송 사안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사안별로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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