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 걸린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경찰은 전날 행정안전부 경찰 제도개선 위원회가 발표한 경찰 통제 권고안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법치주의가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행정안전부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자문위)가 21일 ‘행안부 내 경찰 지원조직’ 신설 등 장관에 의한 경찰 직접 통제로 이어질 수 있는 권고안을 발표하면서 윤석열 정부의 경찰 통제 방안 밑그림이 구체화됐다. 행안부는 경찰 수사권 확대에 따른 통제는 당연하다는 입장이지만, 경찰 내부에서는 고위직 인사권 등을 고리로 경찰 수사 독립성과 중립성이 침해당할 수 있다며 반발한다. 전문가들은 경찰권 통제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그 방식이 ‘1980년대 내무부 경찰국’ 형식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외부기구 등을 활용한 민주적 통제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권고안 주요 내용은 △행안부 장관의 경찰 관련 업무를 보좌할 지원조직(경찰국) 신설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규칙 제정 △경찰청장 등 고위직 후보추천위원회 설치 △경찰청장 등에 대한 장관의 징계 요구권 부여 등이다.
자문위는 경찰 지원조직 신설은 상위법인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는 대신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규칙은 행안부령(시행규칙) 제정을 통해 가능하다고 본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신설에 이어 경찰 통제 방안 역시 여소야대 국회를 피해 시행령을 통한 ‘우회 상장’을 권고한 것이다.
자문위가 내세운 근거는 ‘각 행정기관의 장은 소속청 중요정책수립에 관해 청장을 직접 지휘할 수 있다’는 정부조직법 조항이다. 자문위는 “소속청이 설치된 10개 부처 중 기획재정부 등 7개 부처는 지휘규칙을 운영 중이다. 법무부는 검찰청법에 장관의 지휘감독 규정이 있어서 지휘규칙을 제정하지 않았다. 경찰과 소방, 해경을 관장하는 행안부와 해양수산부에만 지휘규정이 없다”고 설명했다.
경찰제도개선 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인 황정근 변호사(가운데)가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행안부 내 ‘경찰국’(경찰 관련 지원 조직) 설치 등을 포함한 권고안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윤석대 자문위원, 오른쪽은 공동위원장인 한창섭 행안부 차관.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그러나 민주화 이후인 1990년 12월 국회가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면서 당시 내무부 장관의 사무에서 ‘치안’(경찰)을 삭제하고, 치안 사무를 관장할 경찰청을 신설한 입법 정신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이 나온다. 시행령 개정이 아닌 법 개정 사안이라는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내무부의 치안 권한을 삭제하고 경찰청에 권한을 부여한 입법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부처의 소속청 지휘규칙엔 장관의 중요정책 승인권을 비롯해 예산·인사 등에 대한 보고 규정을 담고 있다. 그간 경찰이 자체적으로 정책·예산·인사 업무를 수행한 뒤 국가경찰위원회에 보고하거나 심의·의결 받던 구조였다면, 행안부(장관)가 실질적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경찰 내부에서는 자문위 권고안이 현실화할 경우 행안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경찰 통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경찰 수사권을 크게 확대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꾸준히 나왔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해 꾸려진 경찰개혁위원회는 경찰권한 분산과 외부통제 방안 등을 제시했다.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경찰권은 크게 강화됐지만 국가경찰에 집중된 권한을 지역으로 분산하는 자치경찰제 등 경찰권 분산 방안은 진전을 보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상황에서 2차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경찰 수사권을 더 크게 늘려놓았다.
경찰 통제 기구인 국가경찰위원회가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다보니, 행안부 장관 밑에 경찰국이 이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청을 통제하는 국가경찰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운영됐다. 법무부 안에 검찰국을 두는 것처럼 누군가는 실질적인 통제를 해야 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경찰개혁위원회 위원이었던 양홍석 변호사는 “경찰이 그동안 청와대의 통제를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경찰국 신설에 대한 우려는 공감하지만 행안부 장관이 경찰 업무에 어떤 역할을 하는 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고 했다.
다만 그 방식이 굳이 30여년 전 폐지된 경찰국 형식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반론도 많다. 경찰 조직은 인사·진급에 특히 취약한 모습을 보이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갈지자’ 행보를 보여왔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행안부 장관 권한을 늘린 이번 권고안이 경찰의 권력 종속성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무부 검찰국을 행안부 경찰국 모델로 드는 것에 대해서도, 전·현직 검사들이 장관부터 주요 보직을 장악한 법무부 조직 구성을 볼 때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안전부 장관의 경찰 통제 방안을 담은 '경찰제개선 자문위원회의' 최종 권고안 발표를 앞둔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경찰개혁네트워크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국' 신설 등 행안부의 경찰 직접통제 계획을 비판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학계와 시민사회는 행안부 주도의 경찰 통제 대신 민주적 외부통제 강화를 촉구했다. 특히 자문위가 국가경찰위원회 제도개선을 포함해 법 개정 등이 필요한 장기과제를 추후 대통령 직속 경찰제도발전위원회(가칭)에서 다루라고 권고한 만큼 보다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 통제 방안에는 국회 통제방안, 민간 통제기구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여러 통제 방법이 있는데 경찰국처럼 역사적으로 답이 아니라고 증명된 방식으로 정권에 종속시키는 통제는 답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에서 국무총리도 보좌기관에 불과하다. 행안부 장관이 중간에 들어간다고 해서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되리라는 것은 착각”이라고 덧붙였다.
경찰개혁네트워크도 “정치적 통제 강화보다 민주적 통제 방안에 대한 검토가 우선돼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가 추천하는 위원으로 구성된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국가경찰위원회를 실질화해 경찰의 인사와 예산을 통제하고, 옴부즈맨과 시민이 참여하는 다수의 장치를 통해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서혜미 기자
ha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