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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꼽빠 얌모 야”…집회에 민중가요만 있는 거 아니거든요

등록 2022-06-30 05:00수정 2022-06-30 09:52

강남합창단, 시흥·용인시립예술단 지회장 인터뷰
‘노래도 노동’ 노동자 정체성 깨달아
“우리의 가장 큰 무기도 노래”
집회 관심 없던 시민들 시선 끌어
지난 14일 저녁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공공운수노조 강남합창단지회가 공연을 하고 있다. 강남합창단지회 제공
지난 14일 저녁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공공운수노조 강남합창단지회가 공연을 하고 있다. 강남합창단지회 제공

“얌모, 얌모, 꼽빠 얌모 야”(Jammo, jammo, ncoppa jammo ja: 올라가자, 올라가자, 꼭대기로 올라가자)

지난 14일 저녁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주변은 이탈리아 민요 ‘푸니쿨리 푸니쿨라’를 노래하는 우렁찬 목소리로 가득찼다. 화물연대 총파업 촛불문화제 무대에 오른 박해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강남합창단지회 부지회장은 “이 노래는 활화산을 ‘다 같이 함께 올라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화물연대의 파업을 우리도 동참하자는 뜻에서 노래를 선곡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정의 노래’로 알려진 ‘슈타인송’이 울려 퍼졌다. 지난 7일 경기도 의왕에서 열린 화물연대 총파업 출정식에선 공공운수노조 시흥시립예술단지회가 오페라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를 불렀다.

팔뚝질과 민중가요가 익숙한 집회·파업 현장에서 오페라나 가곡, 대중가요를 부르는 ‘예술 노동자’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문화예술지부·지회 조합원들이 주도하는 ‘문화 연대’다. 22~29일 사이 만난 박해찬 강남합창단지회 부지회장과 김종형 시흥시립예술단, 김병주 용인시립예술단 지회장은 “집회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한 번이라도 쳐다보는 걸 보면서 노래에 힘이 있다는 걸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시흥시립예술단원들이 지난 7일 열린 화물연대 총파업 현장에서 공연하고 있다. 시흥시립예술단 제공
시흥시립예술단원들이 지난 7일 열린 화물연대 총파업 현장에서 공연하고 있다. 시흥시립예술단 제공

“무지했던 탓인지, 제 노래가 노동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47명 규모의 시흥시립예술단 노조는 지난해 처음 결성됐다. 시에 고용돼 주당 15시간 미만 근로하는 초단시간 근로자인 단원들은 노조를 결성하기 전까지 자신들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육아휴직을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면서 임신·출산한 여성 단원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모습을 보며 이들은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고 노조를 만들었다. 김종형 지회장은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노래’로 다른 노동자들과의 연대에 나서게 됐다고 했다. “처음엔 민중가요를 불렀어요. 그런데 노래라는 건 그 순간만큼은 서로 즐기자는데 목적이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겠다고 요청했죠. 대중가요나 가곡을 불렀는데 현장의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김종형 지회장은 어디서든 노래를 통해 ‘우리 모두 노동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구호를 외칠 때만 해도 (주변에서)시끄럽다는 눈치였는데 현장 분위기가 바뀌더라고요. 그때 우리의 노래가 힘이 있구나, 색다른 집회 문화를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이들을 찾는 요청은 최근 부쩍 늘었지만, 단원들은 소정의 교통비만 받고 어디든 달려간다.

시흥시립예술단은 내년부터 정규직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이제는 시에서 우리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하니까, 더 좋은 무대를 보여주려고요.”

용인시립예술단 단원들이 비정규직 예술단원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천막농성중인 경기도 용인시청 앞에서 22일 오후 ‘넬라 판타지아’를 연습하고 있다. 용인/윤운식 선임기자 yws@ani.co.kr
용인시립예술단 단원들이 비정규직 예술단원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천막농성중인 경기도 용인시청 앞에서 22일 오후 ‘넬라 판타지아’를 연습하고 있다. 용인/윤운식 선임기자 yws@ani.co.kr

그러나 지자체 산하기관에 소속된 다른 예술노동자들은 노동 조건 개선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공연 횟수에 따라 돈을 받는 고용형태인 초단시간 근로자들이라 대부분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51명의 비정규직 조합원으로 구성된 용인시립예술단은 공연이 없을 경우 연습시간으로 지정된 ‘일주일 9시간’에 해당하는 임금(한 달 약 130만원)을 받아 단원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한다. 월급이 30만원가량인 강남합창단지회 단원들은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용인시립예술단은 현재 용인시청 앞에서 시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천막 농성 중이다. 일주일에 두세차례 오페라나, 대중가요 등을 부르는 ‘공연 투쟁’을 한다. 김병주 용인시립예술단 지회장은 안정적인 고용형태에서 마음 놓고 공연을 하고 싶다고 했다. “고임금을 받으려는 게 목적이 아니에요. 예술단은 시민들을 위해 존재합니다. 저희는 더 많은 시민에게 찾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이들의 농성은 시민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를 응원할 사람은 시민들뿐이라고 생각해 여기서 공연을 시작했죠. 예술단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 시에도 시립예술단이 있었어요?’라고 얘기하는 시민도 있었어요.”

김병주 지회장은 집회 현장에서 ‘노래’가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노래라는 방식은 전혀 폭력적이지 않아요.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무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김병주 지회장의 지휘로 단원들이 영화 <미션>의 오에스티(OST) ‘넬라판타지아’를 불렀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용인시립예술단 단원들이 비정규직 예술단원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천막 농성 중인 경기도 용인시청 앞에서 22일 오후 ‘넬라 판타지아’를 연습하고 있다. 용인/윤운식 선임기자 yws@ani.co.kr
용인시립예술단 단원들이 비정규직 예술단원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천막 농성 중인 경기도 용인시청 앞에서 22일 오후 ‘넬라 판타지아’를 연습하고 있다. 용인/윤운식 선임기자 yws@ani.co.kr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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