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골드버그 신임 주한미국대사가 지난 16일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 권리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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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퀴어 퍼레이드가 열렸다. 코로나 범유행 때문에 3년 만에 열린 행사다. 퍼레이드가 열리기 직전 폭우가 내렸다. 그래도 사람들은 걸었다. 흠뻑 젖은 채 을지로, 종로와 퇴계로를 자랑스럽게 걸었다. 많은 기독교 신자도 나섰다. ‘동성애자는 회개하라’거나 ‘예수에게 돌아가라’는 팻말을 들고 퍼레이드 참여자들을 향해 열정적으로 소리쳤다. 퍼레이드 참여자들도 반대 시위에 익숙해졌다. 오랜 역사를 가진 반대 시위는 축제의 일부분이 됐다. 이젠 퍼레이드 참가자들도 반대 시위가 없으면 뭔가 좀 허전하다는 생각마저 들 것이다.
인상적인 건 성조기의 실종이었다. 시위를 하는 기독교 신자들은 매년 성조기를 흔들었다. 종교와 미국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성조기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올해는 성조기가 사라졌다. 갓 한국에 파견된 주한미국대사가 성소수자 지지 선언을 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10여개 나라 외교관과 함께 무지개깃발을 들고 외쳤다. “평등과 인권을 위해 다 함께 싸울 것입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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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버그가 소환한 ‘타미 페이’
미국대사 필립 골드버그는 게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미국대사가 동성 파트너까지 둔 게이라는 사실을 지금에야 알게 됐을지도 모른다. 부임이 확정되자 많은 기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 언론은 성정체성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미디어들조차도 인권운동가가 아니라 한국과 긴밀하게 외교적 협조를 해야 하는 정식 대사가 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을 수 있다. ‘외교관 부임 기사에 성정체성을 쓸 필요는 없다’는 반박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의 성정체성을 명확하게 기사에 밝히는 미디어가 기독교계 신문들이라는 건 꽤 재미있는 일이긴 하다.
미국 텔레비전 전도사 타미 페이는 자신의 쇼에서 동성애 에이즈 환자를 위해 기도하고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이 되어야만 한다”고 당부했다. 그의 실화를 다룬 영화 <타미 페이의 눈>의 한 장면. 유튜브 화면 갈무리
여기서 진보와 보수에 대한 개념 정리를 해보자. 골드버그는 진보인가? 성소수자로서 성소수자 인권을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점에서 그는 진보다. 외교적으로 따지자면 그는 꽤 보수적이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09년 그는 미 국무부의 유엔 대북 제재 이행 담당 조정관을 맡았다. 그해 6월 그는 북한 2차 핵실험에 대응하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의 적극적인 이행을 중국에 요청했다. 대북 강경파라는 소리다. 성소수자인 대북 강경파 미국대사 앞에서 진보주의자인 당신과 보수주의자인 당신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정확한 답변이라는 건 없다. 정확한 답변이라는 건 대개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걸 이야기하기 위해 다른 ‘게이 아이콘’을 한명 소환할 생각이다. 타미 페이라는 미국 크리스천 전도사다. 올해 오스카 시상식에서 배우 제시카 채스테인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타미 페이의 눈>(The Eyes of Tammy Faye)은 2007년 사망한 타미 페이의 인생을 다룬 영화다. 슬프게도 이 영화와 제시카 채스테인의 여우주연상 수상은 그리 화제가 되지 못했다. 모든 미디어의 관심이 윌 스미스가 사회자 뺨을 때리는 폭력 사건에 집중됐던 탓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역시 올해 오스카 시상식에서 누가 어떤 상을 받았는지 기억하기가 꽤 힘들 것이다. 이래서 사람은 함부로 주먹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
이야기를 다시 타미 페이에게 돌려보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타미 페이는 1960년대 초 전도사 짐 베이커와 결혼해 지역 방송국에서 아이들을 위한 전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인기가 높아지자 두 사람은 1974년 ‘더 피티엘 클럽’(The PTL Club)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쇼는 대성공이었다. 남성 전도사들이 나와 지루하게 설교를 하던 과거의 프로그램과는 달랐다. 타미 페이와 팀 베이커는 70년대적으로 화려한 복장과 화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 춤추고 노래했다. 일종의 크리스천 버라이어티 예능에 가까웠던 쇼는 순식간에 혁명적인 인기를 모았다. 미국에서만 1천만명이 프로그램을 애청했다. 그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로부터 기부금을 모았다. 돈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타미 페이와 짐 베이커가 벌인 가장 놀라운 사업은 크리스천 테마파크, 그러니까 놀이동산 건설이었다. 둘은 1978년 2억달러(2600억원)의 자금을 투자해 ‘헤리티지 유에스에이(USA)’라는 테마파크를 세웠다. 크리스천을 위한 디즈니랜드였다. 실제로 70년대 말 ‘헤리티지 유에스에이’는 디즈니랜드, 디즈니월드와 함께 당시 미국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내는 테마파크였다. 거기에 무슨 ‘예수님 롤러코스터'라거나 ‘십계 바이킹' 같은 게 있었던 건 아니다. 대신 오랜 크리스천 성지의 건축 양식을 흉내 낸 호텔과 쇼핑센터, 거대한 교회, 캠핑장 등이 있었다. 기괴한 콘셉트이긴 하지만 70년대란 어차피 조금 기괴한 시대였다. 그 시절의 패션만 검색해봐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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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환자 편든 보수 종교인
이력만 따지자면 타미 페이는 미국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인생을 바쳤던 보수적 종교인으로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균열이 발생한다. 1980년대 초 미국에서는 에이즈 범유행이 시작됐다. 게이 커뮤니티에서 먼저 퍼지기 시작한 에이즈는 빠르게 전세계로 전파됐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인류가 처음으로 마주한 새로운 전염병이었다. 지금처럼 간편하게 바이러스를 조절할 수 있는 치료제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병은 성정체성을 가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보수적인 레이건 정부는 에이즈를 동성애자들의 역병이라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미국 종교계도 에이즈를 동성애자들과 묶어서 비난해댔다.
타미 페이가 남편 팀 베이커와 함께 방송을 진행하는 모습. 유튜브 화면 갈무리
타미 페이는 1985년 자신의 쇼에 에이즈 환자와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그는 에이즈 환자인 동성애자 자식을 가진 부모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젊은이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든 그들은 당신의 아들이고 딸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로서 모든 역경을 물리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는 시청자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에이즈 환자를 그토록 무서워하고 그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어떤 티브이 프로그램도 동성애자 에이즈 환자를 직접 출연시키지 않던 시대였다. 누구도 고통받고 오해받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던 시대였다. 당대 미국에서 가장 거대한 크리스천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에이즈 범유행이 가라앉을 때까지 타미 페이는 계속해서 시청자들에게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전도했다. 이유는 너무나도 종교적으로 간단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므로 모든 사람들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타미 페이의 삶이 옳았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남편 팀 베이커는 사기, 횡령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1989년 구속됐다. 미디어는 팀 베이커와 타미 페이 부부가 엄청난 기부금을 모은 뒤 호화로운 삶을 위해 탕진했다고 보도했다. 황금으로 된 그들 욕실의 수도꼭지는 종교적 부패의 상징이 됐다. 기존 교계 역시 두 사람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들을 비난하지 않으면 미국의 모든 유명한 티브이 전도사들이 함께 몰락할 지경이었던 탓이다. 모든 것을 잃은 타미 페이는 1996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2007년 사망했다. 죽는 날까지 트레이드마크였던 기괴할 정도로 과한 화장을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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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가 남긴 말 “누구든 ‘나’로 살자”
나는 타미 페이를 도덕적인 선인으로도 정치적인 악인으로도 분류할 생각이 없다. 한 인간의 삶은 단순하게 이어지는 직선이 아니다.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복잡하게 이어지는 곡선이다. 세상에는 성소수자 극우주의자도 있다. 독실한 크리스천 사회주의자도 있다. 사람은 진실로 복잡한 존재다. 한 사람의 인생을 선과 악으로 갈라서 평가할 수 없듯이 진보와 보수도 명확한 경계선으로 나눌 수는 없다. 타미 페이의 삶도 마찬가지다.
다만 나는 타미 페이의 유명한 말을 마지막으로 인용할 생각이다. 그는 죽기 전 인터뷰에서 말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이 되어야만 합니다. 젊은이들이여, 누구도 당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라고 강요하도록 내버려두지 마세요.” 나는 이것이 윤리적으로 복잡한 삶을 산, 그럼에도 진정한 크리스천 정신을 끝내 버리지 않았던 사람이 세상에 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종교는 나와 다른 타인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그걸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예수는 이성애자만을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지는 않았다.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만을 위해 짊어지지도 않았다. 너무나도 고색창연한 결론이지만, 어쩌겠는가. 모든 결론은 결국 종교적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영화 잡지 <씨네21> 기자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했다. 사람·영화·도시·옷·물건·정치까지 관심 닿지 않는 곳이 드문 그가 세심한 눈길로 읽어낸 인물평을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