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로펌들의 국외 법률시장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로펌들의 영문명 사용 빈도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이름을 외국시장에서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미국 등 유수 국외 로펌들처럼 창립자의 성을 따서 짓고 있다.
1980년 설립된 법무법인 태평양은 국외 시장에서 비케이엘(BKL)이란 이름을 쓰고 있다. 창립자인 배명인·김인섭·이정훈 변호사의 이름을 딴 것으로, 정식 명칭은 ‘배, 김앤리’(BAE, KIM&LEE)이지만 이를 축약한 비케이엘을 주로 사용한다는 게 태평양 쪽 설명이다. 광장의 영문명도 창업자 이태희·고광하 변호사 성을 딴 리앤고(LEE&KO)이고, 세종과 화우도 각각 신앤김(SHIN&KIM·창립자 신영무·김두식 변호사), 윤앤양(YOON&YANG·창립자 윤호일·양삼승 변호사)이란 영문명을 쓰고 있다. 화우 관계자는 “외국 로펌들이 파운더(설립자) 성을 따서 쓰는 경우가 많다. 해외 마케팅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국외용 이름을 따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초 창립자(김영무·장수길 변호사)의 성을 딴 김앤장은 영문명도 김앤장이다.
창립 변호사 성을 따서 로펌 이름을 짓는 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미국 법률전문지 <아메리칸로이어>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로펌 매출 순위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미국 로펌 커클랜드앤엘리스(Kirkland&Ellis), 레이텀앤왓킨스(Latham&Watkins), 베이커앤맥킨지(Baker&McKenzie)는 모두 변호사의 성을 따서 지은 이름들이다. 미국변호사협회(ABA)의 설명을 보면, 1900년대 초반 ‘로펌에 별도 상호나 가명을 사용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윤리규정이 생기고 여러 주가 로펌 상호를 규제하면서 설립자의 이름을 따는 게 일반화됐다고 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로펌인 니시무라&아사히, 앤더슨 모리&토모츠네, 나가시마 오노&츠네마츠 등도 창립자의 이름이 들어간 사례다.
그러나 최근에는 변호사 이름이 아닌 별도 상호를 사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 5월 <로이터>에 따르면 로펌 상호에 제한을 뒀던 미국 주들이 지난해 이를 폐지하면서 보다 자유로운 이름을 사용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2006년 두 명의 창립자 성을 따서 이름을 지은 로스앤젤레스의 로펌 베이커 마쿼트(Baker Marquart)는 지난해 웨이메이커(Waymaker)로 이름을 바꿨다. “두 명의 백인 남성이 아닌 회사의 모든 사람을 대표하고 싶었다”는 게 로펌 쪽의 설명이었다.
한국 로펌 중에서도 율촌, 바른은 한국명을 그대로 외국에서 사용하고 있다. 율촌 관계자는 “초기에는 율촌의 영문명을 (설립자의 성을 따서) ‘우, 윤, 강, 정 앤한’(Woo, Yun, Kang, Jeong&Han)으로 사용했으나, 글로벌 업무 증가와 고객 혼란 등을 이유로 브랜드 단일화 의견이 대두됐다. 2007년부터 영문명도 율촌(Yulchon)으로 통일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른 쪽도 “회사명에 창업자 이름이 들어가면 그 자체가 기득권이 될 수밖에 없다는 창업자의 경영철학이 반영됐다. 외국 고객에게 한국어 바른(Barun)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회사 소개를 이어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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