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인에게 받은 열쇠로 임차인 허락 없이 점포 문을 열고 들어가 집기를 철거한 임대인에게 건조물침입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건조물침입·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대인 ㄱ씨에게 건조물침입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ㄱ씨는 2019년 3월 임차인 ㄴ씨가 맡겨둔 열쇠로 점포 문을 열고 들어가 커피머신, 주방용품, 간판 등 약 1천만원 상당 물품을 철거하거나 파손시킨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해 5월까지 점포를 임차한 ㄴ씨는 영업중단을 결정하면서 2018년 12월 ㄱ씨에게 ‘새로운 임차 희망자가 오면 점포를 보여주라’고 열쇠를 맡겼는데, 이후 임대차 관련 법적 분쟁이 발생하자 ㄱ씨가 ㄴ씨 허락 없이 점포에 들어가 철거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1·2심은 ㄱ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보고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ㄴ씨가 ㄱ씨에게 가게 열쇠를 건네준 이유는 새 임차인이 올 때 가게를 보여주라는 뜻이었지 내부 물건을 임의로 처분하라는 의도가 아니었던 점, ㄱ씨의 범행은 ㄴ씨와의 임대차계약 기간 중에 벌어졌다는 점 등을 종합해 원심은 “임대인이 임차인의 현실적 점유를 강제적 수단을 동원하여 방해한 채 임대목적물에 출입하는 경우에는 건조물침입죄가 성립한다. ㄱ씨가 ㄴ씨의 점유관리하에 있는 점포를 강제철거하기 위해 이 사건 점포에 들어갔고, 실제로 점포 내부 인테리어를 전부 뜯어내어 파손했는데 이는 ㄴ씨의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것으로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침입”이라고 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ㄱ씨가 ㄴ씨 점포 집기를 임의로 철거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ㄴ씨가 ㄱ씨에게 점포 열쇠를 줘 출입을 승낙했고, ㄱ씨가 통상적인 출입방법에 따라 점포에 들어간 이상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방식으로 점포에 들어갔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설령 ㄴ씨가 ㄱ씨의 출입목적을 알았더라면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을 거란 사정이 있다 해도, ㄱ씨의 행위가 건조물침입죄에서 규정한 ‘침입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ㄴ씨의 의사에 반해 점포에 출입했다는 이유로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에는 건조물침입죄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한다고 밝혔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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