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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재용 사죄 요구’ 현수막…강남역에 계속 나부낄 수 있을까

등록 2022-08-28 15:11수정 2022-08-29 08:38

가장 보통의 재판
강남역 네거리 지키는 ‘사죄 요구’ 현수막
2018년 이후 30일마다 24시간 집회신고
옥외광고물법 “노동·정치운동 현수막 정당”
서초구청 “집회 열리는 동안에만 허용해야”
지난 23일 강남역 사거리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비판 현수막 및 이 현수막 게시자를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지난 23일 강남역 사거리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비판 현수막 및 이 현수막 게시자를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우리 법정에는 창이 없다. 환한 빛이 드는 법정은 영화와 드라마에만 존재한다. 외부와 차단된 이 공간에서 매일 수많은 이들의 한숨과 환호가 교차한다. 몇 줄 판결문에 평탄했던 삶이 크게 출렁이기도 하고, 스스로 어쩌지 못했던 누군가의 삶은 전환점을 맞기도 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재판은 우리 이웃을 한 뼘 더 이해할 수 있는 가늠자다. 평범한 이들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 작은 창을 내려는 이유다.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지난 3월, ㄱ(63)씨가 서울중앙지법 법정에 섰다. 니트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두른 채 피고인석에 선 ㄱ씨는 직업을 묻는 재판장의 말에 “현재는 집회 시위로 일과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ㄱ씨는 매일같이 서울 서초구 강남역 삼성 서초사옥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과거 삼성계열사에 부품을 납품한 협력업체 대표였던 ㄱ씨는 삼성의 부당대우로 인해 결국 사업을 정리하게 됐다며, 회사의 사과를 요구하는 취지의 시위를 벌이는 중이다. 2018년께부터는 삼성 서초사옥 앞인 강남역 8번 출구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을 겨냥한 비판 현수막도 여러개 걸어두었다. 이 때문에 삼성과는 여러 차례 ‘사옥 100m 이내에 삼성이나 이 부회장이 위법행위를 했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지 말라’는 내용을 둘러싸고 가처분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랬던 ㄱ씨가 법정에 서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지난해 10월 벌어졌다. 서초구청이 ‘불법 현수막’이라며 ㄱ씨의 현수막을 철거하자 그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벌어진 것이다. 검사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ㄱ씨는 현수막을 철거하는 공무원의 행정대집행을 방해하고 이를 제지하는 공무원의 뒤통수를 1회 때린 혐의(공무집행방해)로 재판에 넘겨졌다.

ㄱ씨 쪽은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서초구청의 현수막 철거 자체가 위법한 공무집행이기 때문에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법정에서 오고 간 ㄱ씨 쪽의 설명에 따르면, 이날 철거현장에 공무원 등 수십명이 왔고 일부가 현수막 철거에 반대하는 ㄱ씨의 양팔을 포박하면서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고 한다. ㄱ씨의 국선변호인은 지난 7월 결심공판에서 “현수막은 ㄱ씨가 집회신고 후 게시했다. 따라서 서초구청의 철거행위는 적법한 공무집행이 아니고, 적법한 공무집행임을 전제로 한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지 않으니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말했다. 검사는 ㄱ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지난 23일 강남역 사거리에 윤석열 대통령 및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응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불법 현수막”이라며 철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23일 강남역 사거리에 윤석열 대통령 및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응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불법 현수막”이라며 철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자체가 집회·시위용 현수막을 철거하는 행위가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법조계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옥외광고물법 8조는 단체나 개인이 정치활동 또는 노동운동을 위해 집회에 사용하는 현수막을 거는 행위를 허용하고 있다. ㄱ씨는 2018년 이후 30일 단위로 24시간 집회신고를 내고 동료와 교대로 집회 현장을 지키고 있으므로, 옥외광고물법에 따라 이 현수막은 불법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반면 서초구청은 “실제 집회를 개최하지 않으면서 현수막을 내걸기 위한 명목으로 (집회신고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주장했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전문가 자문을 통해 광고물(현수막)을 게시하는 것은 집회가 개최되는 일시에만 한정적으로 사용돼야 하고, 그렇지 않은 행위는 불법이라고 결론 내렸다”며 ㄱ씨의 현수막을 모두 불법으로 보고 철거했다고 밝혔다.

지난 18일, 1심 재판부는 ㄱ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옥외광고물법에서 정한 바와 같이 개인이 적법한 정치활동이나 노동운동을 위한 집회에 사용하기 위한 현수막은 금지할 수 없다. 그러나 실제 집회가 열리고 있는 시간과 장소에 한정해 현수막 사용이 가능하다고 봐야 하고, 집회신고서에 기재된 집회시간이면 제한 없이 현수막 설치가 가능하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며 서초구청의 손을 들었다. ㄱ씨는 판결에 불복해 이튿날 항소했다. 강남역에 나부끼는 현수막은 당분간 계속 유지될 전망이다.

글·사진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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