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가정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를 긴급하게 분리할 필요가 있는 경우, 피해자로부터 분리 조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공무집행방해 및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기소된 ㄱ씨에게 징역8월에 집행유예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5일 밝혔다.
ㄱ씨는 2020년 2월 112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으로부터 여자친구 ㄴ씨와 떨어져 있을 것을 요청받자 화를 내며 경찰을 양손으로 밀어 넘어뜨렸다. ㄱ씨는 체포된 뒤에도 난동을 피우며 파출소 시설(키보드)을 밟아 깨뜨리기도 했다. 앞서 ㄴ씨 어머니는 ‘동거 중인 남자친구가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딸의 연락이 왔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재판에서 ㄱ씨는 되레 ‘피해자 동의 없는 분리 조치’를 문제 삼으며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ㄱ씨에게 ㄴ씨와 떨어질 것을 요청하면서 ㄴ씨 동의를 받지 않은 것이 위법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당시 경찰 대응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가정폭력처벌법의 입법목적과 응급조치를 둔 취지, 가정폭력범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하면 가정폭력 행위자와 피해자의 분리 조치에 피해자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이어 “설령 피해자가 분리 조치를 희망하지 않거나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명했더라도 경찰관이 현장 상황에 따라 분리 조치를 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앞서 1·2심도 ㄱ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 및 80시간의 사회봉사, 40시간의 폭력치료강의 수강을 명령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가정폭력 범죄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응급조치를 할 때 피해자 동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판시한 최초 판례”라고 설명했다.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