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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긴급조치 배상 못 받는 ‘옛 패소자들’…국회의 힘이 필요하다

등록 2022-09-05 06:00수정 2022-09-05 07:48

법치주의 파괴행위 책임 안진다는 선례 깨
패소 확정 피해자들 배상받을 길 없어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지난달 30일 1975년 발동된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한 피해자와 그 가족 등 7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며 원고 승소 취지 판결했다. 사진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지난달 30일 1975년 발동된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한 피해자와 그 가족 등 7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며 원고 승소 취지 판결했다. 사진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달 30일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주심 대법관 김재형)이 선고됐다. 긴급조치 9호의 문제점은 인정하면서도 ‘국가배상 의무는 없다’는 7년 전 대법원 판례를 대법관 13명 전원일치로 변경한 것이다. 이번 판결의 배경과 의미, 판결 뒤 향후 과제 등과 관련해 피해자들을 대리해 소송해온 신동미 변호사(법무법인 덕수)가 글을 보내왔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사건은 2013년 9월17일 소송이 제기돼 1심, 2심에서 모두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대법원은 무려 9년여 만에 원심 판결을 뒤집고 피해자들의 청구를 인용했다. 당연한 결론이 왜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 아쉽기도 하다. 지금의 결론이 7년 전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그런 유의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사법부 역사는 물론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 발전 역사에 중요한 판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만큼 의미가 크다는 얘기다. 단순히 기존 대법원 판례 변경 또는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 인정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의미는 긴급조치 제9호가 어떤 것인지, 긴급조치 제9호 피해자에게 국가는 정치적 책임을 질 뿐이라는 기존 대법원 판례가 왜 문제인지를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온전히 알 수 있다. 또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의 완결은 국회의 몫임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유신독재 비판 틀어막기 위한 초헌법적 ‘긴급조치 9호’

헌법에는 대통령 권한으로 ‘긴급조치권’이 규정돼 있다. ‘긴급조치’는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과 같은 효력이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유신헌법(제53조 제1항, 제2항)은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을 때 긴급조치를 발령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12월27일 선포한 유신헌법에 따른 독재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해 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했다.

긴급조치 제9호는 유신헌법, 박정희 대통령 및 긴급조치를 비판하는 사람을 영장 없이 체포·구금하고,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및 10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했다. 나아가 직장에서 해임, 학교에서 제적도 가능했다. 당시 수사기관과 법원은 헌법상 발령 목적 및 요건과는 거리가 먼 긴급조치 제9호에 따라 강제수사와 재판을 진행했고, “유신헌법 철폐하라”고 한마디 외치고 징역 1년을 선고받는 등 억울한 피해자들이 잇따랐다. 1975년 5월13일 발령된 긴급조치 9호로 1979년 12월8일까지 4년7개월 동안 1천명가량이 처벌받았다.

1979년 12월8일 ‘긴급조치 9호’ 해제와 구속자 석방 소식을 전하고 있는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79년 12월8일 ‘긴급조치 9호’ 해제와 구속자 석방 소식을 전하고 있는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긴급조치 제9호 발령 및 이에 따른 일반 시민에 대한 영장 없는 체포·구금, 수사, 기소 및 재판, 유죄 판결에 의한 복역은,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갖는 긴급조치를 발령하고 이를 집행하는 수사관과 검사 및 법관을 도구로 삼아 법적 절차 안에서 자행된 국가의 불법행위라는 점에 그 특수성이 있다. 법을 이용함으로써 정당한 외관처럼 가장했으나, 실질은 진정한 법치주의를 파괴함으로써 국민의 인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라는 점이 그 본질이다.

피해자 국가배상 인정 안한 종전 대법 판결

대법원은 2013년 4월18일 긴급조치 제9호가 ‘헌법상 발동 목적 및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 무효’라는 전원합의체 결정을 내렸다. 앞서 헌법재판소도 2013년 3월21일 같은 취지로 위헌 결정을 했다.

이에 긴급조치 제9호 피해자들은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선고받고 그 판결이 확정됐다. 이어 구금 기간에 대한 형사보상을 청구하고, 민사상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유죄 판결을 선고받은 이들은 복역은 물론 학교나 직장에서 쫓겨나고 이후 사회 진출에서도 제약을 받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전 대법원은 긴급조치권 발동은 “고도의 정치적 국가행위”로 정치적 책임만 질 뿐 국민 개개인에 법적 책임을 지지 않고, 당시 수사기관과 법관도 법과 명령에 따랐을 뿐 고의나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없어 국가는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1심에서 승소했던 판결도 이 판례에 따라 패소로 변경됐다. 패소 판결이 확정된 피해자 수만도 190여명이다. 그리고 수년 뒤 사법농단 수사 과정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긴급조치 제9호 피해자들에게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 판례에 어긋나는 ‘인용 판결’을 내린 하급심 판사의 징계를 고려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확인됐다.

늦었지만 바로 잡은 정의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이런 잘못된 것을 바로잡았다. 법적 표현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전원합의체 판결 다수의견을 인용해본다. “긴급조치 제9호 발령부터 적용, 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 작용이 전체적으로 보아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하여 그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 위법하다. (…) 긴급조치 제9호의 적용·집행으로 강제수사를 받거나 유죄 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함으로써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

진정한 법치주의란 무엇인지, 법률을 새로 만들어 법의 이름과 형식으로 자행되는 국가의 불법행위도 법치주의라 할 수 있는지, 긴급조치 제9호처럼 법을 가장해 실질적 법치주의가 위정자에 의해 파괴됐을 때 사법부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말해줬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만약 종전 대법원 판결이 그대로 유지됐다면 이는 후대에게 법이라는 이름으로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행위가 자행될 경우 국가는 법적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위험한 선례가 됐을 것이다. 과거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위정자의 도구 역할을 했다는 사법부에 대한 비판이 50년이 지난 지금의 사법부에도 그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다행히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보편적 정의는 언젠가는 실현된다는 믿음,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는 작금의 한탄에도 정의를 확인하고 인권을 실현할 최후의 보루는 사법부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늦었지만 사법부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확인한 판결이다. 이에 사법부 역사는 물론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에 중요한 판결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국회가 ‘구제’ 입법에 나서 스스로 존재 이유 증명할 때

여전히 남은 문제가 있다. 현재 긴급조치 제9호 피해자 상당수는 2015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국가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이런 결과는 순전히 법원에 의한 것이지 피해자 본인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비슷한 시기에 소송을 제기했는데 재판부에 따라 상황이 갈린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누구는 배상받고 누구는 받지 못한다면 이 역시 형평에 반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이를 다툴 법적 절차도 따로 없다.

결국 이미 패소 판결이 확정된 긴급조치 제9호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은 입법으로 해결돼야 한다. 이들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입법은, 여·야, 진보·보수에 따라 입장을 달리해 다툴 문제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실질적 법치주의 및 국민의 인권보호 문제다. 대법원이 쏘아 올린 공을 이제 국회가 이어받아 스스로 자신의 그 존재 이유를 증명할 때다. 국회가 조속히 관련 입법에 나서주기를 촉구한다.

신동미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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