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권 시절 최대 권력 스캔들로 꼽히는 ‘윤필용 사건’으로 고문을 당하고 강제전역한 전직 장교에게 대법원이 ‘국가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1973년 4월 육군 3군단에서 근무하던 중 윤필용 사건 여죄를 조사해야 한다는 이유로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강제전역한 황아무개 전 육군 대령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7일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윤필용 사건은 1973년 4월 윤필용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소장)이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이 노쇠했으니 후계를 준비해야 한다”고 발언한 게 발단이 되어 군에서 쫓겨난 사건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를 ‘쿠데타 모의’에 해당한다며 그를 군에서 쫓아내고 측근들까지 고문·전역시켰다. 윤 전 사령관은 그해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1980년 특별사면됐다.
이 사건에 연루된 황 전 대령도 고문과 폭행을 당한 끝에 강제로 전역지원서를 작성했다. 이후 황 전 대령은 “의사결정의 자유가 박탈될 정도의 강박 상태에서 전역지원서를 작성했으므로 전역은 무효”라며 소송을 내 2017년 9월 승소가 확정됐다. 이듬해 황 전 대령과 가족들은 “국가의 불법행위로 정신적 손해를 입었으므로 위자료 총 4억4천만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1·2심은 황 전 대령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시효가 지났다고 보고 원고 패소로 판단했다. 1973년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손해를 안 날로부터 3년’이란 소멸시효가 지났고, 소멸시효가 지난 뒤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국가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소멸시효 기산점인 ‘손해를 안 날’은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와 손해 사이 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인식한 날을 의미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황 전 대령이 손해를 안 날은 국가의 가혹 행위 및 전역이 불법이었음을 명시한 전역무효확인소송 승소 확정일인 2017년 9월이고, 국가배상청구의 소멸시효는 이때부터 기산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전역처분이 무효임이 확인되기 전에는 가혹 행위와 전역처분의 위법성을 주장하며 국가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는 사정을 인식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보고, 전역무효판결이 확정됐을 때 비로소 가혹 행위 및 전역처분으로 인한 국가배상청구권의 단기소멸시효가 기산된다고 본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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