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촌고가교 위에서 바라본 용산 정비창. 서울시는 이 일대 약 50만㎡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할 계획이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철로를 가로지르는 서울 용산구 이촌고가교 위로 올라서자 ‘50만㎡’라는 숫자의 위용이 훅, 다가왔다. “여기 와 보시면, 직접 보니 정말로 서울에 이렇게 넓은 빈 땅이 있었냐는 말이 절로 나온다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7일 서울 용산 정비창 터,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허허벌판을 내려다보며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이 말했다. 이 땅은 지난 7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용산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곳이다. 빈곤사회연대는 용산 참사 13주기였던 지난 1월, 그날을 기억하고 용산 정비창의 대안적인 미래를 시민들과 함께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용산역 광장~용산역 구름다리~용산정비창 정문~이촌고가교~용산 참사 현장 구간 3.3㎞를 걷는 ‘용산 다크투어(재난이나 참사 현장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교훈을 얻는 여행 프로그램)’를 시작했다. 신청자가 10명 남짓 되면 투어를 진행한다.
다크투어 진행을 맡은 이원호 집행위원장이 용산역 광장에서 설명을 시작했다. “큰길 건너 저기 주상복합 보이시죠? ‘용산 센트럴파크 해링턴스퀘어’라는 곳인데, 저기가 용산 참사가 있었던 현장이에요. 그때 시민단체들이 용산역 광장에서 추모제를 하려고 했는데, 에이치디씨(HDC)현대산업개발이 관리하는 땅이라고 경찰에서 집회신고를 안 받아줘서 결국 장소를 서울역으로 옮겼어요. 현대산업개발은 용산역 광장의 주인이 아니라, 점용권(사용권)만 갖고 있을 뿐인데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나마 요즘은 시민단체들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서, 현대산업개발 쪽에서 협의서를 받아오라고만 하더라고요.” 민자역사인 용산역을 오가면서도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자본의 이익과 시민의 권리가 충돌하는 용산역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역사 안으로 들어서니 시야가 좀 더 뚜렷해졌다. 용산역에 갈 때마다 ‘앉을 데가 없다’고 느꼈는데, 그러고 보니 대합실은 드넓은 반면 의자나 벤치가 유독 적다. 한국철도공사 광역철도 수송통계 등을 보면, 케이티엑스(KTX)와 일반열차, 지하철 등을 모두 포함한 용산역의 하루 평균 이용객은 지난해 8만8768명,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엔 13만3258명이었다. 이 가운데 일행을 기다리거나 열차 출발시간이 남은 이들은 어디서 시간을 보냈을까. 대합실을 포위하듯 들어찬 식당, 빵집, 카페였을까. 광장처럼 아무것도 없는 공간엔 추석을 앞두고 상품을 판매하는 임시행사장이 설치돼 있었다. 이 집행위원장은 “이런 행사장이 수시로 설치된다”고 했다. 승객이 아닌 고객을 위한 곳, 공간을 비워둔 이유가 따로 있었던 셈이다.
용산역은 1899년 경인선이 이어질 때만 해도 간이역에 불과했다. 하지만 러일전쟁을 전후해 일본이 조선 침탈과 대륙 진출을 목적으로 경부선, 경의선, 경원선 등을 잇달아 개통하면서 전략적 요충지로 떠올랐다. 경의선·경원선의 시발역이자, 일제가 용산역 동쪽에 건설한 일본군사령부 등 군사기지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군용열차가 특히 많이 다니는 곳이 됐다. 히로히토 일왕에게 수류탄을 던진 이봉창 의사가 1919~1924년 용산역에서 전철수 등으로 일했다는 기록도 눈에 띈다.
구글 어스 프로로 본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예정지. 그래픽 노수민 기자 bluedahlia@hani.co.kr
한편 일제는 1905년 용산역 서쪽, 즉 지금의 정비창 터에 ‘철도 용산 공작반’을 설치했다. 기관차 등을 수리·정비하고 제작까지 하는 거대한 ‘철도 공장’이었다. 그러다 이 일대는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7월16일, 서울을 탈환하려는 미군의 ‘용산 대폭격’으로 폐허가 된다. 당시 북한군이 점령 중이던 용산역과 정비창, 군사기지 등을 파괴하려고 미군은 B-29 폭격기 수십대를 동원해 폭탄을 쏟아부었다. 지난해 7월, 서울시가 용산도시기억전시관에서 공개한 미국 국립문서보관청의 당시 동영상 자료를 보면, 폭격이 진행되면서 “(한강) 철교 위로 폭탄 72톤이 떨어지고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전후 복구된 정비창은 서울 공작창, 서울철도차량정비창,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 등으로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1970년대부터는 열차 생산을 다른 곳으로 넘기는 대신, ‘케이티엑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열차를 정비한다’는 세평을 받을 정도로 철도 정비기지로 중추적인 구실을 수행했다.
일반 여객보다 군용·화물 수송 등에 더 특화돼 있던 용산역은 2004년 케이티엑스 개통과 민자역사 전환으로 크게 변화했다. 2006년 정부는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의 케이티엑스 건설 부채 해결 방안으로 용산 정비창 터에 초고층 빌딩을 짓는 용산역세권 개발 계획을 내놨다. 이듬해,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정비창 터와 한강 사이 서부이촌동을 포함한 57만㎡를 용산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겠다며 바람을 태풍으로 키웠다. 국토해양부는 2009년부터 네 차례 고시를 통해 “용산역세권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시행”을 이유로 용산 정비창의 차량 검수시설을 대전, 충북 제천 등으로 이전했고, 차량기지와 정비창 건물 등은 2012년 마침내 철거됐다.
하지만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사업비 31조원 규모의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을 위해 땅 소유주인 코레일은 공모형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추진한다. 2007년 말 삼성물산-국민연금 컨소시엄이 사업자로 선정됐고, 곧이어 시행사로 기업 30여곳이 투자한 페이퍼 컴퍼니 ‘드림허브프로젝트 금융투자주식회사’를, 실제 개발 업무를 맡을 자산관리·업무위탁 회사로 ‘용산역세권개발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그런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부동산 경기 침체를 맞으면서 시행사가 땅 매입 대금을 제때 마련하지 못했고, 여러 투자사들 사이에 격한 갈등까지 벌어지면서 결국 2013년 부도 처리됐다.
정비창 터 개발론에 다시 불이 붙은 건 2020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이곳을 미니 신도시급으로 개발해 주택 8천호를 공급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석달 뒤 정부는 용적률을 올려 주택 공급을 1만호로 늘리겠다고 했다. 지난해 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으로 복귀한 오 시장의 생각은 달랐다. “용산은 강북 전체를 변화시킬 100만평의 선물이다. 서울의 마지막 기회의 땅, 용산을 대한민국의 라데팡스(프랑스 파리 외곽의 대규모 상업지구)로 만들겠다.”(2021년 3월31일 관훈토론회) 서울시는 지난 3월 내놓은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용산 정비창을 개발하고, 이를 여의도 국제디지털금융지구와 연계해 ‘한강 중심 글로벌 혁신코어’를 조성하겠다고 못박았다. 7월26일엔 오 시장이 직접 브리핑에 나서 “최첨단 미래산업을 육성해 경제를 살리겠다”며 용산 국제업무지구 재추진을 공식화했다. 2007년 당시 반대가 극심했던 서부이촌동은 이번 계획에선 제외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7월26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의 청사진은 화려하고 매끈하다. “용산 정비창 일대는 초고층 마천루 사이에 드넓은 공원과 녹지가 펼쳐지고, 글로벌 하이테크 기업이 앞다투어 입주하고 싶어 하는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거듭난다.” 외국 기업과 인재 유치·정착을 돕는 국제교육시설, 병원 등의 외국인 생활 인프라가 들어서고, 일자리와 연구개발(R&D), 마이스(MICE, 글로벌 회의·관광·컨벤션·전시회), 주거, 여가생활이 그 안에서 이뤄지는 ‘직주혼합’ 도시가 만들어진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이 지역을 ‘입지규제최소지역’으로 지정해 법적 상한 용적률 1500% 이상의 초고층 건물을 짓고, 전체 부지의 70% 이상을 업무·상업 등 비주거용으로 채우겠다고 밝혔다.
또 내년 상반기까지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하고 개발계획을 수립해, 2024년 하반기에 기반시설 공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사업은 코레일과 에스에이치(SH)공사가 공동사업시행자로 나서 기반시설을 먼저 개발하고, 이후에 민간사업자에게 부지를 나눠 개발을 맡긴다는 구상이다. 기반시설 개발에 공공이 투자하는 사업비는 12조5천억원이다.
이 구상은 여러 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지난 1월26일 ‘용산정비창 개발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연 시민대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손정원 런던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의도에도 업무공간 추가 수요가 크게 존재하지 않고, 기존 강남 업무지구를 확장하는 계획도 여러 건 예정돼 있어 용산 국제업무지구는 기존 업무지구와 제로섬 게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국내 시장을 겨냥한 국외 기업은 이미 거의 다 들어와 있고, 홍콩·싱가포르 등에서 아시아 본사를 뺏어오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송도 국제업무지구의 사례를 들며 “주거용지 면적을 크게 늘렸고, 중요 업무건물 건설 계획도 몇개 포기했다. 목표 개발연도였던 2015년을 한참 넘기고도 아직 미완성”이라며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정 지역에 초고층 빌딩을 집중적으로 조성하는 방식은 자본의 논리일 뿐, 도시의 생동감과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있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는 “용산 국제업무지구 조감도와 개발 예정인 세운상가 조감도에 무슨 차이가 있나. 서울 도심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 신도시를 짓는다고 해도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용산 국제업무지구 계획엔 도시의 기능과 미래의 삶을 둘러싼 구체적인 고민이 없다”며 “1970년대에 그리던 미래의 그림을 지금도 여전히 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녹지를 조성하고 그 위에 초고층 빌딩을 짓는 ‘빛나는 도시’ 개념을 설명하면서 “저밀 고층의 도시는 필연적으로 자동차 중심이 되고,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으면 만남도, 이웃도 사라지게 된다. 이미 실패한 시장의 논리를 공공에서 받아들이는 게 안타깝다”고도 했다.
용산역에서 서울드래곤시티 호텔로 이어지는 구름다리(공중보행교)에선 정비창 터가 한눈에 펼쳐진다. 반대쪽 작은 숲 사이, 줄에 걸린 옷가지들이 눈에 들어오는 곳은 용산역 홈리스 텐트촌이다. 2005년 종교단체가 그 자리에서 노숙인 무료급식을 시작하면서 생겨났다고 한다. 원래는 용산 전자상가로 향하던 구름다리엔 게임팩이나 시디(CD), 잡지 등을 파는 좌판이 깔렸고, 밤엔 노숙인들이 바닥에 상자를 깔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2017년 호텔이 개장하면서 좌판도, 노숙인도 쫓겨났다. 20여명이 살고 있는 텐트촌엔 구름다리에서 쫓겨난 이들도 있다.
지난 4월엔 이 가운데 텐트 4동이 강제로 철거됐다. 용산구가 지금의 구름다리를 없애는 대신 새 공중보행교를 건설하라고 현대산업개발과 서울드래곤시티에 허가했는데, 새 구간이 텐트촌 일부를 가로지르게 된 탓이다. 이 집행위원장은 “지난 연말에 착공식을 했는데, 올해 3월 말까지도 텐트촌 주민들은 관련된 얘기를 누구한테서도 듣지 못했다”며 “용산구 의원한테 부탁해 겨우 새 다리가 텐트촌을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로부터 일주일여 뒤에야 시공사 관계자한테 텐트 4동을 철거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창복(67)씨는 이들 중 한명이다. 철거된 텐트를 안쪽으로 옮겨 텐트촌에 남았다. 그런데 약 한달 만에 그가 새로 자리를 잡은 ‘집터’ 근처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나, 텐트가 많이 탔다. 그래도 떠나지 않고 텐트를 고쳐 살고 있다. 용산역 구름다리 위에서 20여년을 지내다 아는 동생의 권유로 내려온 이곳이 “밖에서 생활하는 것보단 낫기 때문”이다. 마음은 편치 않다.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사업에 따라 임대주택 입주를 신청했지만, 대기번호가 600번대라 내년에라도 들어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정비창 개발한다는 소리가 들리니까, 언제 또 철거가 될지 무슨 이상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지 늘 불안하다. 임대주택 들어간 뒤라면 모르겠지만, 여기서 쫓겨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2009년 1월20일 새벽, 경찰이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남일당 망루에 오른 용산4구역 철거민의 ‘강제진압’에 나선 가운데 망루에 불이 났다. 이 화재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목숨을 잃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사람’을 지우는 개발은 고질적이다. 용산역 다크투어의 종착점인 용산 참사 현장, 용산 센트럴파크 해링턴스퀘어 근처엔 추모비는커녕 이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알려주는 어떤 표시도 없다. 참사는 2007년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로 촉발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제업무지구를 중심으로 한 서울시의 ‘용산 부도심 일대 개발 마스터플랜’은 용산 지역의 땅값, 집값을 폭등시키는 동시에 재개발 광풍을 불렀다. 그런 맥락 속에서 용산 4구역에선 강제퇴거가 진행됐고, 그에 저항하는 철거민 30여명이 2009년 1월19일 남일당에 망루를 지어 올랐다. 국가는 만 하루도 참지 않고 이튿날 새벽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진압’에 나섰다. 큰 화재가 발생했고,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 이 건물 앞, 깔끔하게 정리된 잔디밭은 매일 밟고 지난다 해도 그날 여기서 왜 어떻게 사람이 죽었는지 잠시나마 떠올리기 무망하다. 재개발조합이 추모비 건설도, 추모 표지 설치도 반대했다고 한다. 참사 현장에 숨진 철거민 5명을 상징하는 나무 5그루를 심자는 유가족 등의 제안도 “집값 떨어진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결국 서울시의 중재로 단지 안쪽 다른 건물 1층에 용산 도시기억전시관을 만들고, 한귀퉁이에 사진 몇 점 거는 걸로 마무리됐다. 이원호 집행위원장이 말했다. “용산 센트럴파크 해링턴스퀘어 매매가가 28억~48억원이고, 전세가가 15억~25억원이에요. 서민 주거지를 폭력적인 철거로 싹 밀고, 수십억원대 자산가의 동네로 만든 거죠.”
주거권 단체들은 용산 정비창 터에 공공임대주택을 지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의 계획대로라면, 이곳에 들어설 공공임대주택은 많아야 1250가구다. 하지만 이창복씨의 600번대 대기번호가 보여주듯, 서울엔 공공임대주택이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시가 ‘퇴출’을 공언한 반지하 주택만 해도 20만가구다. 특히 용산구의 경우 최저주거기준 미달과 지하·옥탑 거주 등 주거빈곤 가구 비율은 18.7%로 서울시 평균(18.1%)보다 높고, 자가 거주 비율은 34.0%로 서울시 평균(42.1%)보다 낮다(통계청, 2015 인구주택총조사). 반면 장기 공공임대주택 재고는 서울시 평균(6.1%)의 4분의 1도 안 되는 1.35%(국토교통부, 2020 임대주택 통계)에 불과하다.
사실 핵심은 국제업무지구냐 공공임대주택이냐가 아니라, 이 거대한 공공의 땅을 어떻게 활용하는 게 가장 공익적이냐다. 공공이 민간의 상업시설 개발에 앞서 12조5천억원을 들여 인프라를 만들어주는 게 공정한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민생경제위원장인 이강훈 변호사는 “민간이 개발하는 상업지구인데 공공이 나서서 토지 개발을 해줘야 될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이전에 크게 한번 데어서 민간사업자가 선뜻 달려들지 않을까 봐 그들의 사업 위험을 대신 떠안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적인 흐름은 ‘오밀조밀한 이야기가 있는 도시’다. 이렇게 국공유지를 다른 방식으로 활용한다면, 도시의 그랜드 플랜인 만큼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주거지든 상업지든, 용산의 오랜 역사와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만들면 도시의 매력을 증진시키고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7일 오전 용산 정비창 인근 서울 용산구 이촌로 백빈건널목의 한적한 모습. 하루에 열차 300여대가 지나다니는 이곳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 촬영지이기도 하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건축가 임형남·노은주 부부는 <공간을 탐하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제안한다. “‘토건 세력’들은 서울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시간을 낡은 것, 더러운 것, 낙후된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어 누구도 그 명분에 반대할 수 없도록 무력화한 다음에 외곽부터 차근차근 지워나가고 있었다. (중략) 도시란 개발의 대상이 아니고 자본의 꽃밭도 아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고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인간에 대한 약간의 존경과 시간에 대한 경외가 있다면, 도시의 진정한 모습을 알기 위해 가장 먼저, 그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보기를 원한다.” 오세훈 시장이 들어봄 직한 권유가 아닐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