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대화 등을 목적으로 하는 1대1 익명 채팅 사이트가 진화하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집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꿀알바’’ ‘대화 좋아하는 여성이라면 가능!’
인스타그램의 한 계정에 홍보글이 올라왔다. 계정 운영자는 여성들이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계정을 팔로우하면서 접근한다. 홍보글에는 ‘#취업준비생’‘#학원비벌기’‘#다이어트’ 등 젊은 여성이 검색할 만한 해시태그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 <한겨레>는 지난달 30일 취재를 위해 이 계정이 안내하고 있는 카카오톡 채팅방에 접속했다. 상담사는 “알바○○(유명 아르바이트 중개 플랫폼) 협력사 아웃소싱업체”라며 “추천하는 알바가 있다. 폰(전화)으로 하는 재택근무인데 익명으로 이성 친구와 수다만 떨어주면 월 200만∼300만원은 보장한다”고 소개했다.
성적 대화 등을 목적으로 하는 1대1 익명 채팅 사이트가 진화하고 있다.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여성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 뒤 채팅 사이트에 투입한다. 사이트 이용자들은 채팅을 하면서 상대 여성에게 실시간으로 ‘선물 코인’을 쏜다. 채팅 사이트 운영자는 선물 코인을 유통하면서 수수료를 챙긴다. 성적 대화나 성적 행위를 목적으로 했던 과거의 전화방·화상대화방이 온라인으로 옮겨와 진화한 형태다.
“일단 한 번 들어가 보시면 감이 올 겁니다. 사이트 알려드릴까요?”
‘어떤 대화를 해야 하냐’는 질문에 상담사가 답했다. 그는 상담사이자 ‘온라인 포주’인 중간업자다. 오전 10시∼오후 7시 카카오톡으로 언제든 그와 대화할 수 있다. 아침저녁으로 메시지를 보내 여성 ‘알바생’을 관리한다. 그는 기자의 성별과 나이를 물은 뒤 사이트 주소와 ‘추천인 코드’를 알려줬다. 이 코드가 없으면 회원가입을 할 수 없다.
지난 6일 오후4시께 사이트에 접속하자 평일인데도 200여개의 채팅방이 운영 중이었다. 돈 버는 방식은 겉으로 보기엔 간단하다. 채팅을 하면 상대의 한마디마다 10코인(10원)이 쌓인다. 중간업자의 설명대로 상대는 ‘기분이 좋으면’ 선물 코인도 수시로 쏜다. 실제로 한 채팅방에 입장하자 “야하게 놀자” “특정 부위를 보여달라”는 말과 함께 상대 남성이 6만630코인을 선물로 보냈다. 채팅방에 입장한 지 3분도 지나지 않아 6만630원을 번 셈이다.
남성 이용자가 1대1 채팅방에서 특정 부위를 보여달라는 말과 함께 선물 코인을 쏘는 모습(왼쪽)과 코인 구매창. 채팅 사이트 갈무리
그러나 코인을 ‘돈’으로 쥐려면 조건이 붙는다. ①코인은 100만코인(100만원)이 돼야 현금으로 환전(수수료 10% 제외)할 수 있다. ②매주 토요일 자정까지 환전하지 않으면 자동 소멸한다. 매주 100만코인 이상 받지 못하면 돈을 손에 넣을 수 없다. 이런 시스템은 여성 ‘알바생’이 코인을 모으기 위해 상대의 성적 요구를 들어주게 되는 ‘유인책’이 된다.
남성 이용자는 성착취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코인을 구입한다. 한 번에 최소 15만원부터 최대 100만원까지 코인을 살 수 있다. 하루에 무한대로 여러 번 결제 가능하다. 결제는 문화상품권으로만 할 수 있다. 여성 ‘알바생’은 코인을 돈으로 환전할 때 계좌번호를 입력해야 하지만, 남성 이용자의 개인정보는 철저히 보호한다.
이런 사이트가 버젓이 운영 중이지만 단속·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풍속영업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2조’를 보면, 풍속영업의 범위를 비디오물감상실업, 노래연습장업, 식품접객업 등 오프라인 공간으로 한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 전화방·화상대화방의 영업 구조가 온라인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며 “1대1 대화 방식이기 때문에 공연성(불특정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상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성매매나 유사 성행위로 이어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어 단속·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고 했다.
청소년이 손쉽게 접근 가능하다는 점도 문제다. 사이트 접속과 회원가입 과정에 생년월일을 입력하거나,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등 미성년자 접근을 차단하는 장치가 없다. 권주리 십대여성인권센터 사무국장은 “건전한 일인 것처럼 홍보·유인하는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착취 수법과 굉장히 닮았다”며 “아이들도 많이 이용하는 에스엔에스로 접근하는 방식이라면 충분히 아동·청소년 피해자도 발생할 수 있다. 최근 한 학생이 비슷한 사이트에 대해서 센터에 질문해 ‘위험한 곳이니 접속하지 말라’고 안내했다”고 말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