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 경기 하남경찰서 경비교통과장(앞줄 왼쪽)이 9월30일 경기남부경찰청에서 지휘검열을 하고 있다. 이수진 과장 제공
“OO관내 성폭(성폭력) 사건 발생했습니다. 긴급으로 여경 근무자 지원 좀 부탁드립니다.”
무전기 속 목소리가 다급하다. 밤이 깊어질수록 여성 경찰관은 더욱 분주해진다. 성폭력 사건 현장에서 여성 경찰관을 많이 찾기 때문이다. 아동학대 사건도 마찬가지다. 피해자의 닫힌 마음을 열고 피해 진술을 들을 때, 여성 경찰관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피해자 안전과 보호에 여성 경찰관은 꼭 필요한 존재다.
그러나 경찰 조직은 여전히 남성 중심적이다. 지난해 기준 전체 경찰공무원(14만835명) 중 여성 경찰관(1만9107명) 비율은 13.6%에 그친다. ‘경찰=남성’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현실에서 여성 경찰관은 차별을 경험한다. 일터의 차별만이 아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 같은 정치인과 일부 시민들은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여경무용론’을 부추긴다.
여성 경찰을 향한 차별과 혐오 속에서도 전국의 여성 경찰은 묵묵하게 일하고 있다. 그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낸 책 <여성, 경찰하는 마음>이 오는 21일 나온다. 2017년 시작된 경찰젠더연구회의 전체 회원 가운데 23명이 참여했다. <한겨레>는 지난 7일 서울 성동구 한 카페에서 책을 함께 쓴 이수진 경기 하남경찰서 경비교통과장과 김영은 서울 남대문경찰서 형사, 이비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관을 만났다.
“왜 여성 경찰이 여길? 경비과는 남자들만 일해요”
“왜 여성 경찰관이 경비과에 오려고 하죠? 여기는 남자들만 근무합니다.”
이수진 과장이 경비과로 가기 위한 4번째 도전 끝에 만난 인사담당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이 과장 눈에 여성 경찰관이 단 한 명도 없는 경비과가 들어온 것은 15년 전 그가 초임 시절의 일이다. 그곳에서 일하기 위해 주요 인사 때마다 꾸준히 지원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4번째 도전에서 왜 경비과에 오려고 하느냐는 말에 그는 “왜 경비과에는 남자들만 근무하나요?”라고 반문했다. 그렇게 그는 ‘금녀의 공간’에 한 발짝 들여놓을 수 있었다.
“경기남부 상황실 하남경찰서 경비과장입니다. 현재 하남서 관내 OO집회 경력 배치했습니다. 안전하게 관리하겠습니다!” 무전기에서 씩씩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집회 현장이나 대테러 훈련 때 일부러 목소리를 더 크게 내기 위해 연습을 많이 했어요. 남성 경찰관에게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되게 강했던 것 같아요.” 이수진 과장은 부단히 노력했다. “4번의 도전 끝에 경비 부서를 ‘뚫고’ 들어간 뒤에 ‘내가 남성 경찰관과 똑같이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노력을 굉장히 많이 했죠.” 그는 여전히 경기남부청 소속 경찰서 경비과장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다.
이수진 과장은 경비업무가 자신에게 ‘딱 맞는다’고 했다. 경비 경찰 간의 끈끈한 관계도, 돌발 상황도 그에겐 경비과의 매력 포인트다. “새벽 2~3시에 (현장에) 튀어 나가는 게 너무 즐거운 거 있죠. 옷(경비복)도 군대 다녀온 사람보다 제가 더 빨리 입어요(웃음).”
지난 7일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 책 집필에 참여한 이비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관(왼쪽), 김영은 서울 남대문경찰서 형사가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주빈 기자
김영은 형사는 여성청소년과에서 학대예방 경찰관으로 일할 때 한 피해자가 준 편지를 4년째 간직하고 있다. 매일 술을 마시는 남편의 상습적인 가정폭력에 시달린 여성이 손글씨로 쓴 편지다. 이 여성은 김 형사가 앞서 지원과 도움을 준 가정폭력 피해자였다. 그의 남편이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 했고, 그 뒤로 1년동안 가정폭력 신고는 없었다.
하지만 수개월 뒤 피해자의 남편이 술에 취해 ‘집을 못 찾겠다’고 신고했다. 불안한 마음에 김 형사는 피해자에게 연락했다. 그가 또 가정폭력을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다행히 피해자는 남편을 피해 있었다. 김 형사는 피해자를 장기 쉼터(보호시설)로 안내했고, 긴급 생활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쉼터로 옮겨가는 피해자는 그런 김 형사에게 빵과 함께 편지를 쥐여줬다.
‘경사님한테 전화해볼까 했는데 민폐일 것 같아서 망설였어요. 그런데 때마침 전화를 주신 거예요. 숙소도 알아봐 주시고, 이혼 법률 상담, 긴급 생활비 지원까지…. 제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받은 관심 중에 가장 큰 사랑과 관심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 편지로 큰 힘을 얻었지만, 김 형사 역시 지난 9년 동안 경찰 생활을 하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일을 당해야 했다.
“순경 시절 파출소에서 일할 때였어요. 경찰이 ‘4대악’ 근절에 앞장선다는 홍보를 엄청나게 했던 땐데,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어요. ‘너 춤출 거니까 근무에서 빠질 거야. 내일부터 경찰서로 와’ 이러는 거 있죠? 몇 달 동안 각종 행사에 불려 가서 정복 입고 춤을 춰야 했죠. 춤춘 사람 모두 20대 순경 계급 여성 경찰관이었어요. 그때부터 여성 경찰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졌던 것 같아요. ‘여경들은 저렇게 춤만 추고 특진한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죠.”
이비현 수사관은 경찰대학을 다닐 때 충격을 받았던 일을 털어놨다. 동기생 120명 가운데 여성은 12명뿐이었다. 학년별 동기생 회장을 뽑는 선거가 있었는데, 선거에 출마한 한 팀엔 여학생이 있었고 다른 한 팀은 남학생들만 있었다. 그런데 남학생 팀이 콘돔 공동 구매를 공약으로 발표했다. 남학생들의 웃음소리가 공약 발표장을 가득 메웠다. 수업 때 가정폭력을 주제로 발표했을 때 ‘여자가 바람피우면 남자가 때릴 수 있는 거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충격을 받은 이 수사관은 자퇴까지 고민했다.
그러나 이 수사관은 경찰에 남기로 마음먹었다. “여성을 희롱하고 성인지 감수성이 낮은 경찰관만 경찰에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경찰관만 경찰에 남는 상황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어요.” 그를 붙잡은 것은 경찰관으로서의 사명감이었다고 한다.
오는 21일 나오는 책 <여성, 경찰하는 마음>. 생각정원 제공
여성 경찰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경찰 안이나 밖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남자 형사한테는 ‘형사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저에게는 ‘언니’ ‘아가씨’라고 부르기도 해요. 진술하다가도 ‘언니, 그런데 이거 이렇게 얘기해도 돼?’라는 식으로 반말하면서 낮춰 부르는 경향이 있죠.”(김영은 형사)
“성폭력 사건을 수사할 때 피의자가 나를 쭉 훑어보면서 성적 대상화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런 피의자가 조사 분위기를 주도하지 못하게 조사실 바깥까지 다 들리도록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신문하죠. ‘그러니까 콘돔을 썼어요, 안 썼어요?’ 이런 식으로요.”(이비현 수사관)
이 뿐만이 아니다. 남성 경찰관의 잘못은 한 개인의 과실로 치부하지만, 여성 경찰관의 잘못은 여성 경찰 전체의 문제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수진 과장은 이런 현실 탓에 지나치게 남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된다고 토로했다. “여성 경찰관이 나서면 ‘너무 많이 나섰다’고 해요. 반대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면 소극적이라고 비난하죠. 어떤 타이밍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눈치를 보고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경찰 안팎의 성인지 감수성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특히 ‘먼지 차별’(일상 속 미묘하지만 만연한 차별)은 여전하다.
“예전엔 ‘여경 싫어, 넌 오지 마’ 같은 말을 대놓고 했어요. 지금은 겉으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어떨 땐 나를 부족한 존재로 대한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혼자 남성 피의자를 조사하는데 괜히 남성 경찰관이 기선 제압을 해주겠다며 조사실에 들어올 때가 있어요. 여자라는 이유로 낮게 보는 성차별이 깔려있다는 걸 느낄 때가 종종 있어요.” (이비현 수사관)
그래도 이비현 수사관은 경찰이 된 것을 후회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힘들고, 아쉽고, 짜증 나고, 화가 나고 이런 순간들이 없지 않지만, 그럴 때마다 ‘잘못된 상황에 감정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에 화가 나는 거다. 나는 뼛속까지 경찰이구나’라고 느낄 때가 많아요.” 김영은 형사도 “여성 경찰관은 피의자, 피해자 성별에 관계없이 제대로 일할 수 있죠. 그래서 지금 여성 경찰은 ‘일당백’”이라고 했다.
세 사람은 남성 경찰과 똑같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여성 경찰이 애써 증명할 필요가 없는 때가 오길 바란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성 경찰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이수진 과장은 답했다. “여성 경찰은 그냥 ‘경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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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빈 기자
yes@hani.co.kr,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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