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5일 오후 경북 안동 길안면 700살 용계리 은행나무 옆에서 최윤호 진흥녹화센터 대표와 임세희 안동시 문화유산과 주무관이 이야기하고 있다. 김양진 기자
곧 부채꼴 잎들이 노랗게 물들 경북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를 찾았다. 와룡산과 약산 사이를 흐르는 시냇물을 서쪽에 두고 700년 넘게 살아온 이 노거수(老巨樹·나이 많고 큰 나무)는 멀리서도 우람한 크기의 존재감이 남달랐다. 키 31m, 가슴높이 둘레 14m. 경기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로 유명하다. 1966년 지정된 천연기념물(제175호)이기도 하다.
“상식(上植)되기 전에 아래 있을 때는 전지(가지치기)를 안 해서 가지들이 척척 땅에까지 떨어져서 참 좋았어요. 주민들이 전부 여기 아래 모여서 쉬고….” 2022년 10월5일 오후 용계리 은행나무의 수관(나무의 잎과 가지가 달린 끝부분) 주위에 설치된 철제 울타리를 따라 걷던 용계리 주민 권오선(87) 옹이 예전 은행나무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가 말한 ‘상식’은 올려서 옮겨심었다는 뜻이다. 이 은행나무가 오랫동안 살아온 터전을 떠났음을 말해준다. 원래 지금 자리에서 15m 아래에 있던 나무는 임하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지금 위치로 끌어올려졌다.
“그때 주민들이 이건 살려야 한다고 뜻을 모았어요. 내가 (주민) 대표로 안동군수를 만나서 ‘아무리 국가나 개인이 잘 살아도 이런 나무를 죽여버리면 돈으로도 살릴 수 없잖느냐’ 그렇게 얘기했어요.”
권오선 옹은 남쪽 시냇물을 가리키며 용계리의 과거와 현재를 설명했다. “저 냇가 아래 용계리가 있었어요. 100여 가구가 살던 큰 동네였어요. 지금은 저쪽으로 넘어가서 한 20여 가구 살아요.” 냇가 아래 용계리가 있던 시절, 은행나무는 길안면 소재지로 넘어가는 고갯길 입구에 서 있었다. 마을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이자 중심이었다.
안동시가 제공한 자료를 보면 이 700살 된 나무가 옮겨심긴 곡절이 나온다. 1985년 3월, 임하댐 건설로 마을 침수가 확정되고 경상북도가 각 대학 등에 ‘옮겨심기’를 자문했다. 모두 ‘이식은 어렵다’고 회신했다. 전세계에서 무게 500t 이상으로 추정되는 거목을 이식한 사례 자체가 없었다. 여기에 쓰일 예산만 수십억원. 문화재관리국(현재의 문화재청)과 한국수자원공사도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다가 1986년 말부터 정부 안에서도 ‘초대형 수목 이식에 성공해 국위를 선양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산림청도 흙을 아래에 넣어 올리는 방식의 이식이 가능하다고 보고했다. 1987년 2월, 정부는 뿌리 아래에 흙을 넣어 15m가량 높이는 방식으로 용계리 은행나무를 살리기로 결정했다.
이식 공사는 1990년 11월 첫 삽을 뜬 뒤 1993년 3월에야 마무리됐다. 나무를 철골 위로 올려놓는 데만 2년 넘게 걸렸고, 그 뒤 80여 일 동안은 하루 30~50㎝씩 나무를 천천히 들어 올리는 작업이 진행됐다. 여기에 투입된 총예산은 26억9723만원이다.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나무 하나를 이식하는 데 투입된 금액으로 전례 없는 예산 규모다.
“나무 하나 살리는 데 그만한 돈을… 하는 반감도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나무는 단지 커다란 고목에 얽혀 있는 보이지 않는 문화의 총합을 생각하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또 그것이 선례가 된다면 엄청난 문화 파괴 행위가 잇따라 후세에 지탄받을 죄업이 될 것이고….”(1987년 10월17일 <조선일보> ‘이규태 칼럼’)
용계리 은행나무의 1980년대 모습. 안동시 제공
수백 살 된 노거수는 사람의 정성이 모이고 모여야만 존재할 수 있다. 은행나무는 특별히 더 인간의 정성이 필요하다. 인간이 유일하게 남은 은행나무의 ‘종자 전파자’이기 때문이다. 식물이 종자를 과육으로 둘러싸는 이유는 단 하나다. 동물이 종자를 먹고 멀리 퍼뜨리게 하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미 적어도 수백만 년 전에 은행나무 매개 동물이 멸종했다고 추정한다. 일부 중국의 자생지를 제외하고는 은행나무가 사람이 사는 곳에서만 존재하는 이유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피터 크레인은 은행나무를 일컬어 “사람이 구한 나무”(a tree that people saved)라고 했다.
용계리 은행나무도 사람과 함께 700년을 살았다. 용계리에는 ‘은행나무 전시관’이 있는데, 전시관 안에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은행나무의 옛이야기, 행복과 건강을 바라는 방문객들의 메모가 벽에 붙어 있다.
용계분교 1회 졸업생으로, ‘용계리 은행나무’ 관리를 맡은 주민 권광혁(60)씨도 은행나무와 세월을 같이했다. 권씨는 앞에 보이는 가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가지를 타고 올라가 선생님을 기다리면서 놀았어요. 나무를 타거나 구멍에 숨었어요. 그때는 비나 눈이 오면 선생님들이 종종 (학교에) 늦게 오셨어요. 다 잘라내긴 했는데 굵은 뿌리가 옆의 하천 중간까지 울퉁불퉁 뻗었어요. 큰물이 내려오면 목욕도 하고, 나무뿌리 아래로 지나가는 쏘가리 잡고, 꺽지 잡고 했죠.”
수십 년을 은행나무 곁을 지키며 전시관에서 살다시피 했던 월곡댁 할머니가 자신을 나무 옆에 묻어달라고 했으나 들어주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 기도발이 좋은 나무라고 소문나 무속인들이 몰래 와서 굿을 지낸다는 이야기, 떨어진 씨앗을 인근 농원에 심었더니 거의 100% 발아했다는 이야기,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나무가 소리 내어 울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이 은행나무가 암나무라는 것도 신기한 이야깃거리 중 하나다.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 즉 암꽃과 수꽃이 각각 다른 그루에 피는 나무다. 4월이면 초록색의 작고 길쭉한 솔방울같이 생긴 수꽃의 무수히 많은 꽃밥이 바람에 날려, 꽃봉오리같이 생겨 2개 한 쌍으로 피는 암꽃에 기적적으로 붙어야 종자를 맺는다. ‘은행나무도 마주 봐야 연다’는 속담이 전해오는 이유다. 그런데 20여 년 전만 해도 이 주변에 은행나무로는 용계리 은행나무가 유일했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용계리 ‘은행나무 전시관’에 시민들이 붙여놓은 메모지. 김양진 기자
권씨는 “옛날부터 어른들이 ‘저 나무는 암꽃이 (자기 모습을) 물에 비춰서 수정된다’고 하셨는데, 그게 의아하잖아요. 문화재청에서 박사님이 오셨을 때도 물어보니 분명히 수나무가 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아주 멀리서 날아오는 건지…”라고 말했다. 지금은 냇가 건너 찻길에 안동시가 새로 심은 은행나무 수백 그루가 있다.
이날 은행나무 정기점검이 이뤄졌다. “양호한 건 아니지만 이식한 것치곤 좋은 편이네요.” 은행나무 주변 땅의 수분과 생육 상태를 전문 장비로 점검하던 최윤호 진흥녹화센터 대표가 말했다. 이틀 전 비가 온 덕분에 토양은 합격점이었다.
터를 옮긴 지 29년이 지났지만, 나무 높이만큼 서 있는 철제 지주대와 이를 받치는 바닥에 박힌 사각 철골, 지주대 꼭대기에서 연결된 8개의 쇠로 된 로프는 그대로다. 나무가 이 임시 지지시설에서 벗어나려면 얼마나 더 걸릴까.
현장에 나온 임세희 안동시 문화유산과 주무관은 “(지지시설이) 보기에 안 좋아 시에서 연구용역도 했고 곧 정비할 것”이라면서도 “(나무가) 너무 오랫동안 지지시설에 의지해서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 예측하기가 어려워요. 조금씩 조금씩 상태를 보면서 걷어내고 또 걷어내는 방식으로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윤호 대표는 “이런 초대형 나무를 이식한 게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잖아요. 상식할 때 들어 올리려고 굵은 뿌리를 잘라냈고요. 새로 난 뿌리가 언제 예전 굵은 뿌리만 한 지지력을 가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설명을 듣고 나무 위쪽을 쳐다봤다. 비록 홀로 서 있지 못하지만 은행알만큼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도심에 있는 은행나무와는 비교된다. 도심 은행나무들은 해충이나 공해에 강하지만, 최근 암나무라는 이유로,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로, 나무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한순간에 베어진다.
도시에서 용계리 은행나무 같은 700살 거목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용계리 은행나무 종자에선 도시에서 흔히 맡던 고릿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아스팔트가 아니라 흙에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은행알을 살펴보니 뽀얗게 분이 올라왔다. 왜 은행을 ‘은빛 살구’(銀杏)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천연기념물은 그나마 열심히 관리되고 있어요. ‘우영우 팽나무’(경남 창원 북부리 500살 팽나무) 같은 보호수급 나무가 아직 많아요. 그런데 이제 그 정도 수령까지 올라오는 나무가 없다는 게 안타까워요. 200살, 300살 보호수가 방치되는 일이 많아요. 도심 개발이 되면서 큰 나무가 될 기회는 사라져버리고. 나중에 지킬 나무가 없어질지 모릅니다. 우리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에는 얼마나 남을지….”(최윤호 대표)
안동=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온통 회색인 도시에 새들이 우짖습니다. 돌아보면 어김없이 키 큰 나무가 서 있습니다. 사방으로 잎과 가지를 뻗어 세상을 숨 쉴 곳으로 지켜줍니다. 곤충, 새, 사람이 모여 쉽니다. 이야기가 오갑니다. ‘나무 전상서’로 나무를 아끼고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을 전합니다. 4주마다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