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원 이상 횡령·배임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총수는 집행유예 기간 중 범죄행위와 관련한 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법무부의 취업 불승인 처분에 반발해 낸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27일 박 회장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박 회장은 계열사 법인 자금을 아들 박준경 부사장에게 담보 없이 빌려주는 등 총 130억원 규모의 배임 혐의로 기소돼 2018년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됐다. 박 회장은 집행유예 기간에 금호석화 대표이사로 복귀하려 했는데, 2020년 5월 법무부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의 취업제한 조항을 바탕으로 박 회장의 취업승인을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박 회장은 “집행유예 기간은 취업제한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특경법 14조 1항 취업제한 조항은 5억원 이상의 배임 혐의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 ‘징역형의 집행유예 기간이 종료된 날부터 2년’ 동안은 법무부의 승인 없이 유죄판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근거해 박 회장 쪽은 ‘집행유예 기간이 종료된 날로부터 2년간이 취업제한 기간이지, 집행유예 기간은 취업제한 대상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법 취지를 고려해 박 회장 패소로 판결했지만, 2심은 박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1심은 취업제한 조항을 둔 이유가 “범죄행위자가 일정 기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해 관련 기업체를 보호하고 건전한 경제 질서를 확립하려는 목적”이므로 집행유예 기간이라고 해서 달리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문언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며 집행유예 기간은 취업제한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도 1심과 같은 취지로 ‘징역형의 집행유예 기간이 종료된 날로부터 2년’에 집행유예 기간도 포함된다고 봤다. 대법원은 “특경법 14조 1항에서 취업제한 대상자를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라고 정하고 있으므로 취업제한 기간 시기는 ‘유죄판결이 확정된 때’로 볼 수 있다”며 “(집행유예 기간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면) 집행유예 기간이 종료될 때까지 아무 제한 없이 취업제한 대상 기업체에 취업이 가능했다가 위 기간이 경과한 후에야 비로소 취업이 제한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는 취업제한 제도의 입법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사건을 파기환송한다고 밝혔다.
한편, 삼성전자는 이날 이사회를 열어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조작 등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을 회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법적 책임을 지는 등기이사 직은 맡지 않아, 회계 조작 혐의가 유죄로 판결되더라도 회장 직을 수행하는데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법무부는 상법상 주주총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는 미등기 이사는 취업제한 대상인 ‘취업’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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