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돈을 유흥비로 탕진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경찰에 허위신고한 20대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무고 등의 혐의로 기소된 ㄱ(27)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0일 밝혔다.
골프연습장을 운영하는 ㄱ씨의 아버지는 ㄱ씨 명의의 계좌를 사용하고 있었다. ㄱ씨는 2018년 11월~2019년 2월까지 이 계좌에서 1865만원을 몰래 인출해 유흥비로 사용하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ㄱ씨는 고소장에서 “계좌에서 나도 모르는 출금이 이뤄지고 있다. 통장은 아버지와 회사 관리부장 외에는 접근이 불가능한데, 출금자의 신원을 밝혀달라”고 썼다. 조사 결과 이는 ㄱ씨의 ‘자작극’임이 드러났고, 검찰은 ‘성명불상자에게 형사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무고했다’며 그를 재판에 넘겼다.
1·2심은 ㄱ씨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1·2심은 ㄱ씨가 수사 과정에서 회사 관리부장에게 의심이 가도록 진술한 점, 자신의 무고로 제3자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ㄱ씨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ㄱ씨를 재판에 넘긴 검찰의 공소장만으로는 ㄱ씨의 혐의를 유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009년 특정되지 않은 성명불상자에 대한 무고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대법원은 “원심은 피무고자가 ‘관리부장 등’으로 특정됐다고 봤는데, 이는 공소사실에 적시된 바 없는 사실을 일부 추가해 인정한 것”이라며 공소장 변경 없이 무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은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보고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한다고 밝혔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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