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 자신이 지휘하던 부하 병사의 사망 사고 뒤 조현병을 앓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직 군인의 사망에 대해 대법원이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ㄱ씨의 배우자 ㄴ씨가 국가보훈처 산하 지방보훈지청장을 상대로 ‘국가유공자법상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해달라’는 취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1일 밝혔다.
1999년 장교로 임관한 ㄱ씨는 2001년 부하 병장이 작업 중 넘어져 숨진 사고를 겪고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2010년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병원 기록에 따르면 ㄱ씨는 숨진 부하 병사의 말소리를 듣는 등 환청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증세가 악화하면서 2015년 공무상 상병으로 전역한 ㄱ씨는 2017년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1·2심은 ㄱ씨의 조현병이 군복무수행으로 발병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심은 ㄱ씨가 부하 병사 사망 뒤 스트레스를 겪었지만, 조현병 진단을 받고 진료를 시작한 것은 2010년이기 때문에 사망 사고가 조현병 발병의 독립적 원인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2심도 동일한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ㄱ씨의 질환이 직무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ㄱ씨는 임관할 때까지 정신질환으로 진단이나 치료를 받은 적이 없고, 그와 관련된 가족력도 확인되지 않는다. ㄱ씨의 군 동료들도 ㄱ씨가 책임감이 강했으며 성실히 근무했다는 취지의 확인서를 제출했다”며 “ㄱ씨는 임관 후 2년 동안 정상적으로 복무하던 중 발생한 부하 병사의 사망 사고를 겪으면서 조현병 증상이 발병하거나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ㄱ씨는 직무상 겪은 특별한 경험에도 계속된 상당한 업무상 부담과 긴장이 발병·악화에 기여한 것으로 판단할 여지가 많다”며 원심이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보고 판결을 파기해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낸다고 밝혔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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