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및 경찰 관계자 등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현장 에서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한겨레 신소영
집회·시위 관리에는 대규모 경비인력 투입에 적극적인 경찰이, 이태원 참사 당시 일반 시민이 다수 운집한 현장엔 정복 경찰 58명만 투입해 ‘안전 관리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은 주최자가 있는 행사에 한해 경비 대책을 운영해왔다는 해명이지만, 정작 7년 전 경찰 연구용역에서도 ‘주최 없는 행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홍기현 경찰청 경비국장은 31일 기자간담회에서 “주최 쪽이 없는 다중인파 사건에 대응하는 경찰 관련 매뉴얼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참사가 발생한 지난 29일 현장에 배치된 경찰관 137명 중 정복을 입은 경찰관은 58명뿐이었다.
경찰력 배치에 대한 비판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사건 당일 경찰의 대응 문제를 집회 탓으로 돌리면서 더욱 커졌다. 참사 다음날인 30일 이 장관은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될 수 있던 것은 아니”라며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여러 시위와 소요가 있었기 때문에 경비병력이 분산됐다”고 했다. 참사 당일 오후 도심에서 6만명이 참여한 대규모 집회에 투입된 경찰력은 6500여명이었다. 집회 참가자 9.2명당 경찰 1명이 대응한 셈이다.
29일 밤 핼러윈 축제에 몰린 인파로 압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 현장에 30일 오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이 두고 간 조화가 놓여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집회엔 엄정 대응하면서도 시민 안전에는 소홀한 경찰을 겨냥한 비판도 나왔다. 직장인 이수빈(28)씨는 “평일에도 광화문에서 (집회를 하면) 경찰이 불편할 정도로 통행 제재를 많이 한다”며 “10만명 (운집을) 예상했다면 경찰을 많이 배치해 좁은 지역에 인파가 몰리지 않도록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윌리엄 갤로 <미국의 소리>(VOA) 기자는 지난 30일(현지시각) 영국 <비비시>(BBC)에 출연해 “한국은 아주 작은 규모의 시위에도 대규모 경력을 배치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 사건 전에는 대규모 인파 통행을 통제하기 위한 조처가 부족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고 했다.
경찰은 주최 쪽이 따로 없는 상황에서 적절한 안전 대책을 마련하긴 어렵다는 태도를 보였다. 경찰청 경비국 관계자는 “혼잡경비가 경찰 본연의 업무인 건 맞지만 핼러윈처럼 주최 쪽이 불분명하면 경찰이 위험 상황을 모두 예측해 대응하기 어렵다”며 “현행법상 재난 시 지방자치단체가 우선적인 역할을 하고, 경찰도 요청을 받아 (안전 관련) 사항을 검토한다”고 했다. 수도권 경찰서의 한 경비과장은 “집회는 경찰이 책임 주체인 법령 적용을 받고, 신고제라 예측 가능성이 커 적극적 대응이 가능하다”며 행사 대응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경찰은 주최자 없는 대규모 행사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이 2015년 발주한 ‘다중 운집 행사 안전관리를 위한 경찰 개입 수준에 관한 연구용역’은 지역축제나 공연 외 다중 행사는 안전관리계획 등을 수립할 법적 근거가 없어 이런 행사 유형을 정리하고 관리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지만 후속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이윤호 동국대 교수(경찰행정학)는 “공공안전·질서 유지가 경찰의 책임인 만큼 주최자가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단위면적당 인구밀집도 기준을 정하고, 그 이상을 초과할 경우 경찰이나 지자체에 관리 의무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남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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