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및 경찰 관계자 등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현장 에서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한겨레 신소영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집회·시위 상황이 아니면 경찰이 국민을 통제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대통령실 발언에 법조계 반발이 거세다. 혼잡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를 통제할 경찰의 명백한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권한 문제’를 들어 국가가 ‘국민 보호’라는 의무를 지키지 못한 점을 회피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달 31일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경찰은 집회나 시위 같은 상황이 아니면 일반 국민을 통제할 법적·제도적 권한이 없다”며 “(행사) 주최 쪽 요청이 있거나 보완이 필요하면 경찰이 선제적으로 나설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법적·제도적 권한에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는 책임회피성 발언을, 대통령실도 엄호하고 나선 것이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명백히 사실과 다른 발언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경찰법’과 ‘경찰관직무집행법’에 근거해 혼잡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경찰이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명백한 법적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경찰법(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경찰 임무가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지역 내 다중운집 행사 관련 혼잡 교통 및 안전 관리’가 경찰 사무라고도 적시하고 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도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극도의 혼잡’이 있을 때 “위해 방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쓰여있다. 그밖에 재난안전법도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행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 및 조정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양홍석 변호사는 대통령실 발언을 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경찰관직무집행법상 경찰에게 (이태원 참사와 같은 경우에 대응할 수 있는) 포괄적인 권한이 주어져 있다”며 “(집회나 시위 등) 신고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안전 사고 예방’이라는 법이 부여한 권한을 상황에 따라 경찰은 행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직 경찰 간부도 “경찰관 직무집행법상 다중이 군집하는 상황에서 경찰이 질서를 유지하라고 명령할 수 있다”며 “따로 신고되지 않은 축제에 직접 출동한 적도 있다. (대통령실 발언은) 이상민 장관에게 불똥이 튈까 보호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 보호’라는 경찰 의무가 명확한데 ‘권한 문제’로 대통령실이 의제를 축소한다는 비판도 있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를 이행하지 못해 국민 156명이 숨진 상황에서 ‘권한이 없어 대응 못했다’는 정도로 국가 책임을 축소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것이다. 이창민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검경개혁위원장)는 “의무는 ‘해야 한다’지만, 권한은 ‘안 해도 되는 것’이다. 혼잡해 사고가 날 가능성이 큰 상황에 놓인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권한이 아닌 의무”라며 “대통령실은 ‘권한 부족’을 언급하지만 면피성 발언으로 보인다. 권한 문제를 떠나 국가가 위험을 예방할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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