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자가 혈액·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 매개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에이즈 예방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지난달 24일 헌법재판소에 “‘에이즈 예방법’ 제19조 및 제25조 제2호는 명확성의 원칙 및 비례의 원칙을 위반하여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고 9일 밝혔다.
에이즈예방법 제19조는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같은 법 제25조 제2호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헌재는 2019년 신진화 당시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의 제청으로 에이즈예방법 19조와 25조 2호의 위헌 여부를 심리하고 있다.
인권위는 의료기술 발달로 에이즈를 전파되지 않을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아 비례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봤다. 1990년대 중반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이 도입되면서 현재는 만성질환으로 관리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감염인이 매일 꾸준히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복용하면 혈중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양이 타인에게 전파되지 않는 상태가 된다.
또한 ‘체액’과 ‘전파매개행위’와 같은 용어들도 추상적이고 광범위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났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헌법재판소가 ‘에이즈예방법’ 제19조, 제25조 제2호에 대해 심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헌재가 이들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해소하고, 소수자의 인권이 존중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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