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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배에 낸 구멍으로 밥·약 먹는 2살 희진이…“평생 누워지내야 한다지만…”

등록 2022-11-14 05:00수정 2022-11-14 09:28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
생후 4개월에 중증 뇌병변 장애 판정
뇌출혈로 저산소성·허혈성 뇌 손상
한달 수백만원 재활치료비에 생계 막막
“언젠가 좋아지지 않을까” 희망으로 치료 계속
2021년 5월 뇌병변 중증장애 판정을 받은 김희진(가명) 어린이의 어머니가 위루관을 통해 약물을 주입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2021년 5월 뇌병변 중증장애 판정을 받은 김희진(가명) 어린이의 어머니가 위루관을 통해 약물을 주입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중증 뇌병변 장애가 있는 희진이(가명·22개월)는 배에 뚫린 구멍(위루관)으로 하루에 식사와 약을 세번씩 공급받는다. 희진이의 성대가 마비된 상태라 음식물을 입으로 삼킬 경우, 자칫 잘못하면 기도로 넘어가면서 폐렴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일 만난 엄마 이서영(가명·30)씨는 막힘없이 능숙하게 주사기로 희진이에게 약물을 투여했다. 콧줄(비위관)로 식사와 약물을 투여하던 때보다는 편하다. 지난 7월 위루관 수술을 하기 전까지는 희진이가 토하기라도 하면 콧줄이 입을 통해 빠져나왔다. 의료진이 아닌 이씨가 다시 끼울 수 없어 매번 병원에 가야 했다. 이씨는 “한달 30일 중에 20일을 병원에 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생후 4개월이 된 희진이는 저산소성·허혈성 뇌손상으로 뇌의 95%가 손상됐다. 손발을 자유롭게 움직이거나 스스로 앉고 서는 것도 할 수 없다. 배가 고프거나 졸린 것은 울음소리로 짜증을 표현하는 정도다. 뇌손상 후유증으로 잠도 쉽게 들지 못해 이서영씨가 14.5㎏인 희진이를 매일 1~2시간씩 신생아처럼 안아서 가볍게 흔들어주거나, 계속 안고 토닥여줘야 간신히 잠든다.

이씨가 식사를 하루 한끼만 먹는 것도 희진이의 잠투정과 무관하지 않다. 병원에서 주는 보호자 식사가 그가 먹는 제대로 된 끼니의 전부다. 저녁은 과일 등을 제외하면 먹지 않는다. 혹시라도 간신히 잠든 희진이가 깰까 봐서다. 뇌출혈로 망막 출혈이 함께 일어난 희진이는 그 흉터가 동공에 생겼고, 시력을 측정하는 게 의미가 없을 만큼 눈이 나빠졌다.

대신 소리와 냄새 등 다른 감각이 매우 예민하게 발달했다. 이씨는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나 설거지를 하는 소리에 희진이가 불편함을 느낄까 봐 아예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는다. 그는 “희진이가 깨서 다시 재워야 하는 것보다 차라리 제가 굶는 게 낫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희진이가 잠들었을 때는 화장실도 가급적 가지 않는다. 집 안에서도 발꿈치가 닿지 않도록 까치발을 들고 움직이는 게 습관이 됐다.

약물 투여를 마친 뒤 위루관 주변을 어머니가 닦아주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약물 투여를 마친 뒤 위루관 주변을 어머니가 닦아주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건강하게 태어난 쌍둥이 언니였지만

희진이는 지난해 1월 건강하게 태어난 쌍둥이 가운데 언니였다. 동생과 비교하면 잘 울지도, 보채지도 않는 아이였다. 자신이 상대적으로 더 예민한 동생을 보살펴야 할 때면 남편에게 잠시 희진이를 봐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그러던 지난해 5월, 희진이가 계속 토하자 급하게 찾은 병원에선 ‘증상이 지속되면 평일에 다시 오라’고 이씨와 남편을 돌려보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찾은 병원에선 희진이를 장염으로 진단하고 5일간 입원시켰다. 하지만 희진이는 퇴원한 당일 집에서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해 다시 응급실로 향해야 했다. 병원에서 희진이에게 인공호흡기를 달고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해보니 뇌출혈이 있다고 진단했다.

소아과 전문 중환자실이 있는 다른 병원으로 전원 준비를 하던 차에, 이튿날 아침 경찰이 갑자기 집으로 찾아왔다. 병원에서 아동학대로 신고가 들어왔다고 했다. 남편은 피의자로, 이씨는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다. 호흡이 돌아오고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어보니 희진이에겐 이미 시기가 다른 뇌출혈이 여러 차례 있었다는 사실을 의료진이 확인했다는 것이다. 남편이 홀로 희진이를 돌볼 때 안고 심하게 흔들어 뇌출혈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경찰은 남편의 아동학대 혐의에 대해 보완수사를 하고 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가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난해 9월, 희진이는 또다시 뇌출혈이 발생했다. 병원에선 전에 생겼던 뇌손상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름을 부르면 조금씩 반응했던 희진이는 외부 자극에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됐다. 이씨는 “뇌손상이 더 심해진 이후엔 웃는 것도 기분이 좋아서 웃는 게 아니라 그냥 나오는 거고, 졸리거나 배고픈 게 아닌데 소리 지르는 건 그냥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잦은 가출, 폭력적 성향 보인 남편

남편은 책임감을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출장 수리와 배달 라이더 일을 병행하던 그는 한달 생활비로 50만원을 줬다. 매달 주는 것도 아니었다. 두달에 한번씩 주거나 3개월 연속 주는 등 불규칙했다. 바리스타 일을 했던 이씨의 육아휴직 급여 110만원은 고스란히 생활비로 쓰였다. 희진이의 재활치료비는 남편 명의의 카드로 계산했지만, 그마저도 남편은 본인 기분이 나쁘거나 가출을 하면 카드를 정지시켰다.

남편은 지난해 1월 쌍둥이가 태어난 뒤부터 가출을 셀 수 없이 반복했다. 짧게는 5~6시간, 길게는 2주가량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마다 이씨는 앞뒤로 아이들을 안고 업은 채 남편을 찾으러 동네를 돌아다녔다. 가출하려는 남편을 막아서다 남편이 이씨의 손목을 비틀어 응급실에 치료를 받으러 간 적도 있었다. 현재 이씨는 남편이 타던 오토바이와 비슷한 오토바이를 보기만 해도 두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산후조리원에 갈 형편이 안 돼 출산 후 곧바로 아이들을 보살펴야 했지만, 남편은 출산 이후 “아이들에게 질투를 느낀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아이들 말고 본인에게도 신경을 써달라는 투정을 부린 적도 있었다. 잦은 가출에 지친 이씨가 더는 남편을 찾아다니지 않자 그는 역으로 서운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씨는 지난 8월 집중호우로 반지하 주택에서 침수 피해를 겪은 뒤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바닥이 젖어가던 그 순간에도 남편은 집에 없었다. 두 사람은 지난 8월부터 이혼소송을 진행 중이다. 남편은 쌍둥이 둘을 데려간다고 하거나, 몸이 건강한 동생만 키우겠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희진이의 어머니인 이서영(가명)씨가 우는 희진이를 달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희진이의 어머니인 이서영(가명)씨가 우는 희진이를 달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재활을 위해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외래 진료를 받던 희진이는 지난 9월부터 서울 소재 한 병원의 ‘낮 병동’에 다닌다. 외래와 입원의 중간 단계로, 낮 동안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이씨는 주말을 제외하고 평일 아침 8시30분께 병원에 도착한다. 재활치료는 오후 3시께 끝난다. 목 근육에 전기 자극을 주어 성대 근육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하거나, 쪽쪽이(인공젖꼭지)를 빨게 하는 등 혀를 쓰는 연습을 시키기도 한다. 발이 굳지 않도록 여러 운동과 심리 치료 등을 한다.

낮 병동은 입원비보다는 병원비가 싸지만 외래진료비보다는 비싸다. 재활치료비로만 하루 12만~13만원이 기본적으로 나간다. 그 밖에 각종 검사비, 위루관 튜브와 주사기 등 의료용품 구입비, 월세 50만원과 생활비까지 포함하면 이씨의 육아휴직 급여 110만원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그마저도 내년 4월부터는 육아휴직 급여가 더는 나오지 않는다. 복직을 해야 하지만 희진이를 돌보느라 동생도 친정어머니에게 맡겨놓은 상황에서,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씨는 이 모든 상황을 “혼자서 감내하는 게 많이 힘들다”고 말했다. 하루 1~2시간밖에 자지 못한다는 그는 약 2주 전부터 항우울제·항불안제 등을 매일 복용하고 있다. 이전에는 친정이 근처에 있어 부모님과 함께 희진이를 돌보거나, 동생을 잠깐이라도 매일 보러 갈 수 있었지만 이사한 이후로 둘 다 불가능해졌다. 이사한 지역 어린이집에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기 순번이 있었기 때문이다. 쌍둥이 동생을 데리고 하루 6시간씩 재활병원에 있을 수는 없었다.

엄마는 간병보다도 하루하루 커가는 또 다른 딸과 생이별한 상황이 무엇보다 고되다. 이씨는 쌍둥이 둘째도 보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매일 아침 희진이와 병원에 가기 전 영상 통화로 달랜다. 아직 말을 다 배우지 못한 둘째는 화면에 희진이가 보이면 어른들이 하는 말을 따라 하면서 “희”라고 하며 언니를 반긴다. 이씨는 내년 봄 무렵에 집 근처 어린이집 입소를 할 수 있다면 곧바로 둘째를 데려올 계획이다.

‘언젠가 좋아지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 기대

희진이를 진료하는 대학병원 교수들은 희진이가 평생 침상 생활을 할 것이라고 했다. 안과·이비인후과·신경과·외과·재활의학과 등 7~8개 과 교수들은 모두 이씨에게 “재활밖에 방법이 없다. 그거라도 해야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이씨는 “사실 지금까지 치료를 받으면서 (희진이 상태가) 좋아졌다고 느끼진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좋아지지 않을까, 그 생각 하나로 계속 치료를 받게 하고 있다”고 했다. 일단은 재활밖에 방법이 없다고 하니 돈이 얼마가 들어도, 빚을 내서라도 치료받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엄마는 희진이가 병원이 아닌 다른 장소를 자주 경험해봤으면 한다. 최근에는 아이가 있는 다른 친구들과 만나 희진이를 데리고 쇼핑몰에도 다녀와봤다. 물을 좋아해 목욕통에만 들어가면 울다가도 얌전해지는 희진이를 데리고 워터파크 같은 곳에 가서 물놀이를 해보고 싶다. 상태가 더 좋아지면 겨울엔 눈썰매도 함께 타고 싶다.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배우 송일국씨가 아이들을 데리고 철인3종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요즘 그게 자꾸 생각이 나더라고요. 제가 스포츠를 좋아하니까 희진이랑 같이 할 수 있는 스포츠 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희진이가 방에서 동영상을 보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희진이가 방에서 동영상을 보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희진이네 가정에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우리은행 1005-903-850183 예금주: (사)굿네이버스인터내셔날).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굿네이버스(1544-7944)로 문의해주십시오. 모금에 참여한 뒤 굿네이버스로 연락 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목표 모금액은 20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희진이네 가정의 재활치료비, 의료용품 구입비, 긴급생계비로 쓰이고, 2000만원 이상 모금되면 희진이네 가족처럼 어려운 가정에 지원됩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함께한 ‘2022 나눔꽃 캠페인’에 뇌병변 및 피에르 로뱅 증후군을 앓는 소원이 사연(<한겨레> 10월13일치 12면)이 소개된 뒤 6228분께서 “건강하고, 밝게 잘 자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소원아 웃어줘서 고마워”, “소원아 힘내”라는 따뜻한 응원 메시지와 함께 3503만3994원(11월9일 기준)의 정성을 모아주셨습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소중한 후원금은 소원이네 통합치료비와 치료 부대경비, 긴급생계비로 전달하겠다. 목표액을 넘은 후원금은 소원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아이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겠다”고 전해왔습니다. 소원이네 가족을 위해 귀중한 나눔을 결심하고 실천해주신 모든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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