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의 초석을 닦았던 윤관 전 대법원장이 14일 오전 9시 별세했다. 향년 87.
1958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뒤 1965년 광주지법 판사로 임관한 윤 전 대법원장은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지법 북부지원장, 전주지법원장을 지냈던 정통 법관으로 1988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역임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년 9월 제12대 대법원장에 임명돼 1999년 9월 임기를 마쳤다.
윤 전 대법원장은 사법부 개혁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 전 대법원장 시절 도입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가 대표적이다. 제도 도입 전에는 판사가 수사기록 등 서류만 보고 구속영장 발부를 결정했는데, 영장실질심사가 도입되면서 구속영장이 청구된 모든 피의자가 판사와 대면해서 방어할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윤 전 대법원장 시절 서울민사·형사지법을 통합한 서울중앙지법이 출범하고(1995년) 특허법원·행정법원도 신설됐다(1998년).
고인은 사법부 독립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윤 전 대법원장은 대통령 국외순방 때 대법원장이 환대를 나갔던 관행을 없애고,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할 때 대법원장실에 걸려있던 대통령 사진도 내렸다. 청와대에 법관이 파견 가거나 정보기관 직원이 법원에 머무르는 관행이 없어진 것도 윤 전 대법원장 시절 때였다. 권위주의적인 사법부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전주지법원장 시절 한자 중심의 법률용어 한글화를 담은 ‘우리말 바로쓰기’ 소책자를 발간하고, 1977년 서울형사지법 판사 시절 수갑을 차고 재판에 나온 피고인에게 수갑을 풀고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일화도 알려져 있다.
대법원장 시절 12·12 군사반란 및 5·17 내란 혐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 전두환·노태우씨에게 각각 무기징역·징역 1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며 그릇된 과거사를 사법적으로 청산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고인은 청조근정훈장(199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2015)을 받았고 저서 <신형법론>을 남겼다.
유족으로는 부인 오현씨와 아들 윤준(광주고법원장), 영신(<조선일보> 논설위원), 영보, 영두씨, 며느리 김민정·김수정·정유진·신정아씨, 동생 윤전(변호사)씨 등이 있다. 빈소는 연세대세브란스병원, 발인 16일 오전 9시이다. (02)2227-7580.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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