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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법 “장애인 성폭력 ‘항거불능’, 장애 정도로만 판단해선 안 돼”

등록 2022-11-23 06:00수정 2022-11-23 08:21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임을 이용해 성폭력을 저지른 경우 처벌한다’는 법조항에 대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였는지 장애의 정도 만을 기준으로 기계적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적장애 3급인 피해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ㄱ씨(78)에게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지적장애로 인한 항거불능 상태였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23일 확정했다. 다만 대법원은 검찰의 혐의 입증 부족을 이유로 무죄 판단한 판결 자체는 맞는다고 봤지만, ‘정신적 장애로 인한 항거불능’의 판단 기준에 대해서는 “원심에 법리 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밝혔다.

ㄱ씨는 지적장애 3급 장애인인 피해자 ㄴ(46)씨에게 2019년 2월 “우리 집에 가서 청소하자”며 유인해 5차례에 걸쳐 성폭행한 혐의(성폭력처벌법 위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ㄱ씨는 사건 1년여 전 무료급식소에서 알게 된 ㄴ씨에게 용돈을 주거나 음식을 사주며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ㄴ씨는 웩슬러 지능검사 결과 지능지수 57·사회지수 14 진단을 받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추가교육이나 사회생활 경험 없이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ㄴ씨는 “ㄱ씨에게 꾸지람을 들을까 봐 무섭다”며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ㄱ씨는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음을 이용해 사람을 간음하거나 추행한 사람은 처벌한다’는 성폭력처벌법 6조4항 등에 따라 기소됐다.

1·2심 판결은 엇갈렸다. 1심은 ㄱ씨에게 유죄, 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여야 ㄱ씨의 범죄가 성립하는 것인지 의견이 갈렸기 때문이다. 1심은 “반드시 피해자의 정신적인 장애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에 이르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범행 당시 피해자는 의사소통능력이나 문제해결능력이 부족한 상태였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거나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한 상태였다”며 ㄱ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장애’를 갖고 있어야 ㄱ씨의 범죄가 성립하는데, 이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ㄱ씨가 ㄴ씨의 항거불능 상태를 ‘알면서’ 범행했는지에 대한 검사의 입증이 부족하다며 원심의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다만 원심과 달리 대법원은 ㄴ씨가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였다고 봤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피고인을 상대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거나 행사하기 곤란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는 피해자의 장애 정도와 함께 다른 여러 사정을 종합해 범행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피해자의 장애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인지 여부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당시 정황상 ㄴ씨는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곤란한”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에 대해 이현복 대법원 공보연구관은 “성폭력처벌법 6조 4항의 ‘정신적인 장애’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장애’로 제한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 하급심의 혼란을 해소한 판결이다.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였는지 여부는 피고인과의 관계에서 그 당시 상황을 기준으로 장애의 정도와 함께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향후 유사한 사건의 판단에 지침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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