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전 땐 아예 점심 무렵에 치킨을 시켜 놓고 밤에 에어프라이어에 데워 먹으려고 합니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홍아무개(45)씨는 28일 밤 열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 H조 조별리그 2차전 한국 대 가나 경기를 앞두고 철통 같은 ‘치킨 방어 계획’을 세웠다. 1차전 경기가 열렸던 지난 24일 밤 뒤늦게 치킨을 보급하려다 실패해 중학생 딸을 실망케 했던 상황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다. 홍씨는 27일 “1차전 때 딸이 친구들과 화상으로 치킨을 먹으면서 축구를 보기로 했다고 해서 저녁 7시부터 배달앱을 통해 동네 치킨집을 다 뒤졌지만 ‘준비 중’이 뜨거나 주문 창을 아예 닫아놓는 등 도저히 주문을 할 수가 없었다. 딸의 입이 삐쭉 튀어나왔는데, 내일은 이런 일이 없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카타르 월드컵 기간 치킨 배달 수요는 역대급이다. 대란 수준이다. 과거와 달리 여름이 아닌 초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에 열려 야외가 아닌 ‘방구석’ 응원이 늘어난데다, 1차전에 이어 2차전 역시 야식을 부르는 밤 10시에 시작하기 때문이다.
경기도 광명에 사는 직장인 김한나(32)씨는 “1차전 때 치킨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40분 뒤에 ‘배달 불가’로 주문 취소를 당해 화가 났다. 이번엔 오후 일찍 주문해 미리 받아둘 계획”이라고 했다. 초등학생 두 아들을 둔 김아무개(45)씨는 1차전 경기 때 뒤늦게 주문한 치킨이 배달되며 무려 4마리를 먹어야 했다. “재료 소진과 배달 불가로 두 번이나 배달이 주문 취소 돼 전반전 경기 일부를 포기하고 직접 치킨집에 가서야 두 마리를 살 수 있었다. 주문 취소가 될까봐 예비로 주문했던 치킨 두 마리까지 추가 배달되면서 사흘 내내 치킨만 먹었다”는 것이다. 큰 깨달음을 얻은 김씨는 “내일은 집 앞 치킨집에서 일찌감치 치킨 두 마리를 사둘 계획”이라고 했다.
온라인에서도 이번엔 경기 시작 3~4시간 전부터 미리 치킨을 시켜 놓거나 족발 등 아예 다른 메뉴를 공략하겠다는 게시글이 쏟아지고 있다.
우루과이전이 열린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치킨집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있다. 독자 제공
27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선동에 있는 한 전기구이 치킨집에 월드컵 경기 일정 앞두고 미리 치킨 예약을 받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박지영 기자
소비자뿐 아니라 치킨집 사장과 직원들도 28일 가나전을 앞두고 또 한 번의 치킨 전쟁을 치를 준비에 나섰다. 서울 성북구 동선동에서 전기구이 통닭을 파는 한 가게는 ‘카타르 월드컵 치킨 예약받음’이라는 내용의 게시글을 붙여놓고 치킨 예약 주문을 받고 있다. 이 가게 사장은 <한겨레>와 만나 “주문이 몰려 손님들이 항의할 것을 대비해 월드컵을 앞두고 예약 게시글을 붙였다. 지난 24일 1차전 때는 50마리 정도를 준비했는데, 주문이 20마리는 더 들어와 소화를 못 했었다. 이번엔 70마리를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치킨집 아르바이트생들은 초긴장 상태다. 경기도 한 프랜차이즈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최아무개(19)씨는 “24일 오후 6시부터 예약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다 저녁 7시30분부터는 주문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가게에서 일하는 근무자 4명이 모두 나왔는데도 지난해 크리스마스, 올해 복날보다 훨씬 바빴던 것 같다”고 했다. 최씨는 “가나전 때는 손님이 더 몰릴 것을 대비해 예전에 근무했었던 1명을 추가로 불러 같이 일하기로 했다. 알바생 입장에선 같은 시급을 받는데도 훨씬 바빠 불만스럽기도 하다”고 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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