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노동자와 활동가들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손해배상 선고 결과에 대한 입장발표를 마친 뒤 `국가 손해배상액 30억원'이라고 적힌 종이를 찢어서 날리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원심 판결 중 헬기 및 기중기 손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환송한다.”
30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 2호 법정에서 낭독된 저 짧은 주문을 듣기까지 13년의 세월이 걸렸다. 법정에 들어서며 초조하게 천장만 바라보던 노동자들이 마침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법정을 빠져나온 서로를 얼싸안고 기뻐하는 노동자들의 핏발 선 눈에 어느새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법원 정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손해배상액 30억원’이라 쓰인 에이포(A4) 용지를 손톱만 한 크기로 잘게 찢어 하늘 위로 뿌리며 외쳤다. “우리가 승리했다!”
대법원이 이날 경찰이 쌍용차 파업 노동자와 노동조합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대부분 인정했던 원심을 파기하자, 쌍용차 노동자들은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고 당사자이기도 한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판결 직후 기자회견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문제 해결을 위해 마음을 모았기에 대법원 승소는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들의 대리인인 장석우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손해배상액 대부분을 차지한) 점거 파업 부분은 파기됐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손해배상 소송이) 국가폭력이라는 우리 쪽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대법원은 헬리콥터와 기중기 등을 동원해 노동자의 생명과 신체를 위협한 경찰의 과잉진압이 위법하며, 이에 대항한 노동자들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판결까지 13년 묵은 국가와의 싸움 내내 노동자들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앞서 쌍용차 노동자들은 2009년 5월 정원의 30% 이상을 정리하겠다는 대규모 구조조정안에 반대하는 옥쇄파업에 돌입했다. 경찰은 같은 해 8월 경찰특공대와 헬기 및 기중기 등을 투입해 파업을 강제 진압했다. 형사 처벌을 한 데 이어 손해배상소송까지 뒤따랐다. 경찰은 진압 과정의 기물 파손 및 경찰 부상을 이유로 모두 16억8천만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소송을 노동조합과 노동자 개인을 상대로 냈다. 1심과 2심은 각각 14억1400만원과 11억6760만원을 경찰에 배상하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심리가 6년5개월간 이어지면서, 지연이자가 붙어 배상액 규모가 30억여원으로 불었다.
이에 노동계에서는 대법원의 ‘지연된 정의’에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이날 <한겨레>와 통화에서 “당연히 나와야 할 판결이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13년의 고통 속에 많은 희생자가 나왔으니 이제라도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의) 노조법을 속히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는 “(경찰이 취하하지 않으면) 서울고법에서 다시 파기환송심을 다퉈야 한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만큼 경찰은 즉각 소를 취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2019년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은 과잉진압에 대해 사과하고 임금 등에 제기한 가압류를 모두 취하하면서도, 손해배상 소송 자체는 유지한 바 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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