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열린 민주노총 ‘2022 청년노동자대회’. 민주노총 유튜브 갈무리
지난 11일 민주노총은 ‘2022 청년노동자대회’에서 인기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노래 ‘DNA’를 ‘우리가 청년 전태일이다’, 아이브(IVE)의 ‘AFTER LIKE’를 ‘청노대 LIKE’로 노래 가사를 바꿔 불렀다. 이 노래들은 대회 중간 영상과 공연으로 등장했고, 지금도 민주노총 공식 유튜브 등에 올라가 있다. 이와 관련 원작자 허가를 받지 않기 때문에 ‘저작인격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민주노총 관계자는 “법률 검토를 통해 비상업적인 행사에서 사용되는 노래는 저작권 침해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 개사했다”고 했다. 어떤 설명이 맞을까?
저작인격권이란 저작자의 명예와 인격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저작물에 대해 공표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공표권), 내용·형식을 동일하게 유지할 권리(동일성유지권), 원작자의 성명이 드러날 권리(성명표시권)로 구성된 ‘저작권’의 하위 개념이다. 저작물의 이용에 따른 재산적 권리인 ‘저작재산권’과 마찬가지로 저작권을 구성하는 권리다. 허락 없이 가사를 바꿔 부르는 것은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7일 인천 에스에스지(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2 프로야구 한국야구위원회(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 키움 히어로즈와 에스에스지 랜더스의 경기에서 열띤 응원이 펼쳐지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대중가요 등 노래 개사와 관련 저작인격권 위반 여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다만 최근 판례 중에선 2018년 프로야구 응원가 개사를 두고 벌어진 저작인격권 관련 소송이 자주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당시 소송에서도 법원이 구단 쪽 손을 들어주며 저작인격권 침해를 대부분 인정하지 않은 만큼 개사 사실만으로 무조건 문제가 된다고 볼 순 없다고 지적한다. 도리어 과도한 저작권법 시비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도 있다고 말한다.
2018년 프로야구 구단 응원가의 원작자인 작곡가·작사가 20여명은 “음악 저작물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악곡 또는 가사 일부 변경, 편곡 또는 개사함으로써 동일성유지권 또는 2차적 저작물작성권을 침해했고, 그 과정에서 성명표시권도 침해했다”며 구단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미 프로야구 리그 부대사업 등을 하는 케이비오피(KBOP)를 통해 일정 금액의 음악 저작물 사용료를 지급해왔던 프로야구 구단들은 저작인격권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응원가를 아예 틀지 않거나, 자체 응원곡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그러나 2021년 서울고등법원은 2심 판결에서 “원래 가사와 변경된 가사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변경된 가사는 독립된 저작물로 볼 수 있어 동일성유지권이나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의 침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면서 “원칙적으로 제3자는 저작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그 의사에 반해 저작물의 내용·형식 및 제호에 대한 추가, 삭제 등과 같은 변경을 할 수 없다”면서도 “동일성유지권은 아무런 제한이 없는 절대적인 권리는 아니고, 이용의 목적 및 형태 등에 비춰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의 변경에 대해서는 본질적인 내용의 변경이 아닌 한 그 권리행사가 제한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응원가’라는 목적으로 저작물을 사용하기 위해 일부 내용을 변경했다면 원작자라고 하더라도 동일성유지권 침해를 주장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프로야구 응원가 소송이 제기된 뒤 영향은 사회 전반으로 퍼졌다. 당시 불똥은 연세대와 고려대의 응원가까지 튀었다. ‘연고전’(고연전)에서 관중들이 함께 부르는 두 학교의 응원가는 해외 유명 노래와 대중음악을 개사하고 편곡해 사용하고 있는데, 이 역시 저작인격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다만 연세대 관계자는 30일 <한겨레>에 “지금까지도 응원단에 저작인격권 관련 문제 제기는 없었다”고 했다.
몇년째 이어지는 노래 개사를 둘러싼 저작인격권 논쟁과 관련해 ‘안전한’ 것은 원작자의 허락을 받는 것이다. 정연덕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영리적인 목적으로 저작물을 사용하는 것은 괜찮지만, 저작물의 형식 등을 바꿀 땐 원칙적으로는 저작권자의 허가를 미리 받아야 한다. 원작자가 문제를 제기하면 손해배상 청구가 인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다만 저작권법 취지를 고려해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방식으로 저작권법을 활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법학전문대학의 교수(지적재산권법 전공)는 ㄱ교수는 “지금까지 저작인격권 관련 논란은 프로야구 구장에서 유행가가 사라지게 하고 지난 1980년대엔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데 악용되는 등 악영향을 남겼다”며 “저작권법의 입법 취지는 문화의 향상 발전을 도모하는 것인 만큼 정치적인 의사 표현을 막는 용도로 저작권법을 활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1980년대 군사정권은 노동 현장에서 대중가요 노랫말을 바꿔 불렀다는 이유로 허병섭 목사를 재판에 넘긴 바 있다.
고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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