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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우리 알바 구했어요” 앞치마 두른 서빙봇 ‘삐약이’

등록 2022-12-03 17:24수정 2022-12-03 23:54

[한겨레S] 신희선의 로봇 비평
식당에서 만난 로봇 직원
경기도 화성시 한 닭요리 전문점에서 로봇 ‘삐약이’가 앞치마를 두르고 서빙 업무를 준비하고 있다. 0.5명 정도의 몫은 거뜬하다.
경기도 화성시 한 닭요리 전문점에서 로봇 ‘삐약이’가 앞치마를 두르고 서빙 업무를 준비하고 있다. 0.5명 정도의 몫은 거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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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에서 닭요리 전문점을 운영하는 윤아무개 사장의 하루는 새벽 6시에 시작한다. 가게에 출근해 닭발 육수와 찜닭에 들어가는 한방 육수를 끓여놓고 창문을 활짝 열어 가게를 청소하면 아침 7시. 개점 시간이다. 틈틈이 재료를 손질하고 배달 주문을 받다 보면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다. 끼니를 간단히 때우고 커피 한잔을 하면 다시 저녁 장사 시간이다. 예전에는 직원을 두기도 했지만, 지금은 가게 문을 닫는 자정까지 혼자서 주방을 보고 손님을 맞는다. 대신 조금 일찍 출근하고 몸을 더 바쁘게 움직인다. 그래도 가끔 주문이 몰릴 땐 서른평 남짓 가게를 혼자서 보는 게 쉽지 않다.

‘0.5명’ 몫은 거뜬

윤 사장은 최근 가게에 서빙로봇을 들였다. ‘삐약이’라고 이름 붙이고 노란색 어린이용 앞치마를 사다가 몸통에 둘러줬다. 직원을 고용하면 온종일 바쁘지 않더라도 고정적으로 인건비가 나가서 부담스러웠다고 윤 사장은 설명한다. 로봇이 사람 한명의 몫은 못 하지만 한명 인건비의 반의반 값보다 적은 비용으로 반명 몫은 한다. 게다가 삐약이는 아프지도 않고, 지각이나 무단결근을 하지도 않는다. 다른 직장에 취업했다고 갑자기 그만두는 일도 없다. 4대보험도 주휴수당도 퇴직금도 필요 없다. 하루에 세시간만 충전해주면 군말 없이 일하는 삐약이가 윤 사장은 기특하다.

서빙로봇의 유일한 임무는 ‘지정한 테이블로 음식을 나른다’이다. 바꿔 말하면 로봇이 음식을 나르는 전후로 로봇에 음식을 싣고 내리는 일은 사람이 해야 한다. 윤 사장은 음식을 쟁반 위에 올려놓고 테이블 번호를 화면에 입력한 후 ‘서빙 시작’ 버튼을 누른다. 삐약이가 테이블 앞에 도착해 멈춰 서면 손님은 음식을 테이블 위로 옮긴다. 그러고서 화면에 뜨는 ‘음식을 받았음’ 버튼을 눌러 로봇을 출발지로 돌려보낸다. 진동벨이 울리면 주문한 음식을 직접 받아 오는 ‘셀프서비스’ 시스템보다는 덜 수고롭지만, 여전히 손님이 음식 서빙 일부를 맡아 하는 ‘반셀프’ 시스템이다. 로봇과 손님이 협업하고 있는 셈이다.

삐약이가 온 이후 윤 사장은 일하는 동선을 한결 효율적으로 짤 수 있게 됐다. 주방 입구에 로봇이 대기하는 자리를 만들어놓고, 준비된 음식을 바로 로봇 쟁반 위에 올려 테이블로 보낸다. 덕분에 주방 밖으로 나와 바쁘게 뛰어다닐 일이 훨씬 줄었다. 대신 삐약이의 존재를 확실히 알린다.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우리 알바 구했어요”라며 삐약이를 정식으로 소개하고, 음식을 보낼 땐 “우리 삐약이 가요. 음식 받아주세요” 하고 큰 소리로 부탁한다. 손님 중에 아기가 있으면 조그마한 샌드위치 같은 서비스 메뉴를 로봇에 실어 보내 환심을 구한다. 생일을 맞이한 손님에겐 생일 축하 노래를 틀어서 삐약이를 보낸다. 그래서 삐약이가 가게에 오고 나서 손님과의 교류는 오히려 늘었다. 한 단골은 “네가 삐약이구나”라며 반기고 이튿날 “삐약아, 너 보러 왔다” 하고 다시 찾았다. 손님들은 사람 직원에겐 아는 척을 주저하지만 로봇 직원에겐 안부 인사와 농담을 건넨다. “삐약아, 오늘도 잘 있어? 사장님이 밥은 잘 주디?” 윤 사장이 대신 대답한다. “아유, 전기 빵빵하게 꽂아놨어요.”

제주시에서 흑돼지 전문점을 하는 김아무개 사장도 서빙로봇을 고용했다. 2년 전에 로봇을 도입해서 모두 네대나 운용하고 있지만 김 사장은 로봇으로 인건비를 아끼거나 구인난을 해소하려는 생각은 별로 없다. 대신 가게 홍보에는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김 사장은 반찬 가짓수가 많고 뜨거운 찌개도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반셀프’ 시스템이 불가능하다고 처음부터 판단했다. 그래서 직원 수는 로봇 도입 전후 차이가 없다. 무거운 쟁반을 들고 옮기지 않아도 되어서 직원들의 일이 조금 편해졌을 뿐이다. 이곳의 서빙로봇은 ‘밀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는 손수레’ 역할을 한다.

로봇 직원과 사람 직원이 함께 일하는 이곳에서는 짜인 순서에 따라 모두가 민첩하게 움직인다. 손님이 가게에 들어와 자리를 잡으면 계산대 담당 직원이 테이블 번호를 확인하여 반찬 담당 직원에게 알린다. 직원은 인원수에 맞춰 반찬을 준비한 뒤 ‘반찬 로봇’ 쟁반 위에 올리고 로봇과 함께 이동한다. 테이블에 도착한 직원이 반찬을 내려 상을 차리고 ‘반찬 로봇’을 출발지로 돌려보내니 곧바로 ‘고기×음료 로봇’이 고기를 싣고 다가온다. 주문을 확인한 고기 담당 직원이 실어 보낸 것이다. 테이블 옆에 서 있던 직원이 고기를 꺼내 불판 위에 올리면 이어달리기 같던 직원 세명과 로봇 두대의 합동 임무가 끝난다.

로봇 직원, 일방통행만으로 안 돼

김 사장은 서빙로봇을 도입한 뒤 가게 시스템을 재편했다. 테이블 사이에 로봇이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고, 로봇들의 역할을 반찬 운반과 고기×음료 운반으로 나눠 각 구역에 배치하여 담당 직원과 짝지었다. 직원들에게 로봇 조작법을 알려주고, 음식을 직접 나르는 습관이 몸에 배었더라도 의식적으로 로봇을 자주 활용하라고 일렀다. 계산대를 지키는 직원에게는 ‘컨트롤타워’로서 가게 전체를 조망하고 적시에 필요한 곳으로 로봇과 직원을 보내라는 책임을 맡겼다. 직원과 로봇의 매끄러운 협업 뒤에는 김 사장의 꼼꼼한 작전이 있다.

“이제 손님들도 서빙로봇에 잘 적응해주시고, 직원들도 서빙의 수고가 훨씬 줄어 정말 좋아합니다.” 국내 한 서빙로봇 업체 광고에 등장한 어느 사장의 말이다. 로봇의 순조로운 서빙은 어떻게 가능한가? 윤 사장은 손님들이 로봇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손님과 로봇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주선하고, 김 사장은 직원들의 수고를 덜기 위해 로봇의 역할과 동선을 치밀하게 계획했다. 화성시와 제주시의 두 사장은 식당의 규모와 구조, 직원 수, 음식의 종류에 따라 각자의 방식대로 로봇을 활용하고 있다. 서빙로봇을 활용하는 단 하나의 옳은 방법은 없다. 식당 두 곳이 공통으로 보여주는 것은, 서빙이 주방에서 테이블로 음식을 전달하는 육체노동 이상의 행위라는 점이다. 사람 직원을 로봇 직원으로 대체하거나 사람 직원들에 로봇 직원을 추가하자 기계만으로 완전할 수 없는 서빙 업무의 사회적 성격이 드러났다. 서빙에는 직원과 손님 사이의 신뢰와 직원끼리의 협업이 필요하다. 정해진 경로에 따라 목적지로 음식을 나르는 것이 유일한 임무인 로봇이 홀로 ‘서빙’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서빙로봇이 가게 운영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로봇에 없는 사회성을 누군가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로봇 혼자 하는 서빙은 없다.

과학기술학 연구자

국내 1호 로봇비평가.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 로봇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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