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장남 재용씨 등에게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헐값에 배정해 회사에 970억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허태학 에버랜드 전 사장(왼쪽)과 박노빈 에버랜드 현 사장이 14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참석해 변론재개 결정을 받
재판부 “추가검토 필요”
법관인사로 더 지연될듯 [3판] 재벌의 ‘편법상속’ 논란과 관련해 관심을 모았던 삼성 에버랜드 임원들에 대한 형사재판 판결 선고가 또 미뤄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이현승)는 14일 이재용(38) 삼성전자 상무 등에게 지난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헐값에 넘겨 회사에 970억원 가량의 손실을 입힌 혐의(배임)로 불구속기소된 허태학(62) 당시 에버랜드 사장(현 삼성석유화학 사장)과 박노빈(60) 당시 에버랜드 상무(현 사장)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기초 사실관계를 추가심리하고 여러 법률문제를 깊이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어 직권으로 변론을 재개한다”며 심리를 다시 열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음 공판 날짜를 3월14일로 잡았지만, 곧 있을 법원 인사에서 해당 재판부가 모두 바뀌게 돼 있어 이후 재판은 새 재판부가 맡게 된다. 이에 따라 새 재판부가 방대한 사건기록과 내용을 검토·심리해 선고를 하기까지는 다시 몇 달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이날 변론재개 이유와 관련해 “1만3천여 쪽에 달하는 기록을 자세히 검토한 뒤 판결문 초안을 작성했지만, 마지막 세부검토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결심공판 이후 변호인 쪽이 새로 낸 변론요지서에 담긴 주장과 일본 판례, 검찰 쪽이 제시한 간접증거에 대한 판단 등을 다시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재판부는 이어 “검찰과 변호인 모두 전환사채 발행과 회사의 손해발생 여부, 실권된 전환사채에 대한 전환가격 결정방법 등과 관련한 추가자료 제출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며 “결심공판 이후 제기된 주장에 대해 각각 의견개진을 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재판부는 애초 지난 2일로 선고 날짜를 지정했다가 “사안이 경제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아 고민이 좀더 필요하다”며 선고를 한 차례 연기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재판장인 이현승 부장판사는 “설 연휴와 주말 내내 쉬지 않고 법원에 나와 판결문을 작성했는데, 선고를 하루 앞두고 어쩔 수 없이 변론재개를 결정하게 됐다”며 “할 수만 있다면 선고까지 마무리짓고 떠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양쪽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중요사안에 대해 신중한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 법조계 안팎에서는 사안의 민감함을 지나치게 의식한 재판부가 그 부담을 다음 재판부에 떠넘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어 “1년2개월의 심리기간이 부족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다가오는 법관 인사를 앞두고 부담스러운 재판을 다음 재판부에 넘기는 것은 아닌지, 그로 인해 재판이 장기화되지 않을까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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