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1월 인신매매방지법 시행을 앞두고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종합계획 초안을 14일 공개했다. 인신매매 여부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 피해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피해자에게 맞춤형 지원이 가능한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클립아트코리아
정부가 내년 1월 인신매매방지법 시행을 앞두고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종합계획 초안을 14일 공개했다. 인신매매 여부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 피해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피해자에게 맞춤형 지원을 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성가족부는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하 연구원)과 함께 만든 ‘인신매매 등 방지 종합계획안’을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발표했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인신매매방지법(인신매매 등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성매매와 성착취, 노동 착취, 장기적출 등을 목적으로 사람을 폭행하거나 협박, 감금, 유인, 매매하는 행위 등을 ‘인신매매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신매매 규정은 형법에만 존재했다. 하지만 유형을 ‘매매’로만 한정해 국제사회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국회가 2015년 5월 비준한 유엔 인신매매 방지 의정서에서 ‘인신매매’는 사람을 물건처럼 사고파는 경우뿐만 아니라, 취업 등 새로운 기회를 준다는 구실로 사람을 모집한 다음 여권 등 신분증명 서류를 본인이 보관하지 못하도록 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고, 급여를 스스로 관리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를 포괄한다. 앞서 미국 국무부는 지난 7월 발간한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한국의 인신매매 근절 노력이 이전보다 미흡했다며 인신매매 방지 관련 평가 등급을 20년 만에 1등급에서 2등급으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인신매매 중 가장 많이 발생하는 범죄는 젠더 기반 폭력인 성매매와 성착취다. 연구원이 이날 공개한 경찰청 범죄통계를 보면, 최근 5년(2016∼2020년) 동안 발생한 인신매매 범죄 3233건 중 성매매 및 성착취에 해당하는 인신매매가 75.7%(2446건)로 가장 많았다. 또 같은 기간 발생한 성매매 및 성착취 인신매매 중 아동 대상 범죄는 84.3%(2061건)로, 성인 대상 범죄(385건)에 견줘 약 5배 높게 나타났다. 이밖에도 장애인, 외국인을 노린 노동 착취 인신매매 범죄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이날 공개된 종합계획 초안은 경찰과 출입국관리사무소 공무원, 근로감독관, 선원근로감독관 등이 현장에서 인신매매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식별지표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현재는 권고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피해자가 언제든지 신고할 수 있고 각국 언어로 상담이 가능한 24시간 긴급 상담·신고 체계를 구축하고, 인신매매 피해자 지원 쉼터와 피해자 권익보호기관 설치를 확대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피해자 권익보호기관엔 전문 변호사를 배치해 법률 상담과 소송 지원을 하고 사례 연구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사업장을 바꿀 때 기존 고용주의 허가를 받도록 한 고용허가제를 개정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는 사업장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계약과 다른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을 하거나 임금 체불, 성폭력 등을 당해도 고용주 허가가 없으면 사업장을 옮기지 못한다. 이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인권침해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미 국무부도 최근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고용허가제로 고용된 이주 노동자가 고용주를 변경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하는 (한국) 정부 조치는 이주 노동자의 취약성을 증가시켰다”고 짚었다.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정부의 종합계획 초안이 가진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종철 공익법센터 어필 선임연구원은 “(2014년) 전남 신안군에서 발생한 ‘염전 노예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인신매매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해당 기업(업체)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며 “이주민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지원을 위해 이주민이 강제 퇴거와 구금 위험 없이 안정적인 체류를 할 수 있도록 출입국관리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한숙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은 “현재 종합계획안에는 재원 조달 및 운용 방안이 제시돼 있지 않다”며 “미 국무부 보고서는 특히 어선원 이주 노동자 인신매매 문제에 주목해 어업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보호를 강화하고 인력 모집자가 노동자에게 부과하는 수수료를 없애도록 권고했는데, 이런 내용의 대응 과제는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오늘 공청회에서 공개된 종합계획안은 확정된 안이 아니고, 향후 추가로 전문가 의견과 관계부처 의견을 반영하여 수정·보완 과정을 거칠 예정”이라며 “최종안은 인신매매 등 방지 정책 조정협의회 심의를 거쳐 내년 상반기에 확정·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