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이규원 춘천지검 부부장 검사(왼쪽)와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가운데), 차규근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연합뉴스
“이 사건은 어떤 범죄가 확인된 것도 아니고, 수사 중이지도 않았으나, 필요에 의해 여론몰이된 악마화된 비리 공무원을 여러 국가기관이 나서서 감시하다 법적 절차를 무시한 채 출국을 강제로 막은 것이다.”
별장 성폭력 의혹 조사가 진행되던 시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심야 출국을 막는 과정에서 불법을 저질렀다며 재판에 넘겨진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에게 검찰이 징역형을 구형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김 전 차관에 대해 ‘범죄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여론몰이로 악마화’된 피해자처럼 그를 묘사했다. 김 전 차관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결정판이라는 별장 성폭력 의혹 사건에서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옥곤) 심리로 열린 이 전 비서관과 이규원 검사, 차규근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의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 재판에서, 검찰은 이 전 비서관에게 징역 2년, 이 검사와 차 전 연구위원에게 각각 징역 3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김 전 차관은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3월 법무부 차관에 취임했지만 별장 성폭력 의혹이 제기돼 차관직에서 물러났다. 이 일로 특별수사팀을 꾸린 경찰은 성범죄 동영상을 확보하고 별장 및 김 전 차관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그러나 검찰이 김 전 차관에 대해 경찰이 신청한 통신사실조회를 4차례, 압수수색 영장은 2차례, 출국금지 요청은 2차례 기각하며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을 샀다. 경찰은 김 전 차관에 대해 특수강간 등 10여개 혐의를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다. 이듬해 이뤄진 2차 수사에서도 검찰은 김 전 차관을 무혐의로 결론 내렸고, 특히 1·2차 수사에서 별장에서 찍은 영상 속 남성이 ‘김 전 차관이라고 특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비난을 샀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4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에 이 사건 재수사를 권고하면서 3차 수사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2019년 3월22일 김 전 차관이 심야출국을 시도했고, 이 사건 피고인인 이 검사는 3월23일 자정께 김 전 차관의 출국 시도를 파악하고 ‘긴급 출국금지 조치’를 했다. 이 과정에서 이 사건이 아닌 과거 다른 사건 사건번호로 긴급 출국금지 요청서가 작성됐다. 검찰은 당시 법무부 출입국본부장이었던 차 전 연구위원이 이런 사실을 알고도 출국금지 요청을 승인했다며 함께 재판에 넘겼다. 이 전 비서관은 차 전 연구위원과 이 검사 사이를 조율하며 불법 출국금지 과정 전반을 주도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이날 검찰은 “공권력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적법절차를 지켜야 한다. 지켜지지 않으면 국민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검찰은 “국민적 비난의 대상이 된 사람을 상대로 공권력을 행사할 때에는 적법절차에도 예외를 두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하지만 극악 무도한 범죄자를 상대할 때도 적법절차의 원칙은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그럼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을 때 제지하는 것은 검찰과 법원이어야 한다”고 했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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