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약국에서 일하는 약사 ㄱ씨는 지난달 말 중구약사회가 보낸 문자를 전달받고 당황했다. “트랜스젠더인 OOO은 향정신성 의약품을 정기적으로 처방받는 환자”라며 환자의 이름·생년월일·성별 정체성·처방받는 약 등 특정인을 식별할 수 있는 개인정보가 문자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약사회는 환자가 성별 정정 전후의 여러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시스템에 걸리지 않도록 여러 약국에서 약을 받아가고 있으니, 비급여 향정 환자는 꼭 자격 조회 후 투약하라는 취지의 당부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약사회의 이런 공지는 마약류 의약품 오남용 방지가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현행 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 약사법(87조)은 의약품을 조제·판매하면서 알게 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또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보면, 약국이 수집한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기 위해선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예외 규정이 있지만, 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비용청구를 하거나 응급환자 치료를 위한 의료기관 요청, 약품 부작용 보고 등 제한적이다. 보건당국에서도 관련 내용이 사실이라면 약사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해석했다.
서울 중구약사회에서 약물 오남용 우려 특정인에 대한 개인정보를 공유한 메시지. ㄱ씨 제공
무엇보다도 ㄱ씨는 중구약사회가 특정인의 개인정보를 무단공유한 것도 문제이지만 “
향정신성 의약품 오남용과 상관없는 정보인 성소수자임을 포함해 배포한 것이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약물 오남용 환자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성소수자 혐오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상담사 모임 ‘다다름’의 박도담 대표는 21일 “모두가 볼 수 있는 단톡방에서 특정 환자의 트랜스젠더 사실을 밝히는 것은 인권침해”라며 “약물 오남용은 정체성의 문제가 아닌데, 성소수자 정체성에 낙인을 찍게 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중구약사회 관계자는 “
약물 오남용 주의하라는 차원에서 문자를 보낸 것이지, 그 분의 (소수자성) 특징을 꼭 짚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와 별개로 약사단체는 약물 오남용과 관련해 조제 이전에 약 처방 단계에서부터부터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물 오남용을 하는 환자마다 개인정보를 일선 약국에 배포하고, 약사가 거르도록 하는 조처는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동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사무국장은 “마약류 의약품 처방 결정 권한은 전적으로 의사에게 있다”며 “책임을 방기하고 처방했거나, 알면서도 묵인하는 등 마약류 의약품 처방을 오남용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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