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이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노조법 2·3조 개정’ 요구 농성장에서 하루 동조단식을 하며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날은 128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공동대표단이 릴레이 동조단식에 들어간 지 8일째 되는 날이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윤석열 정부 첫해가 저물고 있다. 첫 검사 출신 대통령의 국정에서는 법치, 공정 등이 유독 강조됐다. 그러나 세밑의 풍경은 이 고상한 단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파업에 불법 딱지를 붙여 수백억원의 손해배상소송으로 옥죄는 일이 법의 이름으로 벌어지고, 이 법을 고치자는 노동자들의 단식농성이 한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전 정부 인사들과 현 야당 인사들을 겨냥한 검찰 수사는 총력전으로 펼쳐지는 반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은 숱한 정황이 드러나는데도 수사 움직임조차 없다. 이태원 참사의 진상과 책임 규명은 참사 발생 발생 두 달이 지나도록 윗선으로 향하지 못하고 있다. 14년6개월의 형기를 남겨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연말 특별사면으로 자유의 몸이 됐다.
조영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을 만나 우리 사회의 현안을 법치주의의 맥락에서 조명해봤다. 조 회장은 128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공동대표단의 일원이다. 지난달 30일부터 단식농성 중인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공동대표단도 릴레이 단식에 들어갔다. 조 회장이 단식에 참여한 26일 국회 앞 농성장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거의 8개월이다. 윤 정부가 강조하는 법치주의가 어떻게 실현되고 있다고 평가하나?
“큰 틀에서 세 가지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법치주의가 아니라 ‘영치주의’ 내지는 ‘시행령에 의한 통치’이고, 두번째는 ‘권력의 사유화’ 내지는 ‘검찰 공화국’의 시작이다. 세번째로는 통합·협치·소통이 아닌 불통, 진영에 갇혀 있는 정치다. 법치주의라고 하는 것은 실질적 법치주의와 형식적 법치주의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형식적 법치주의는 법에 의한 지배인데, 나치도 법에 의해 등장한 것과 같이 일정한 법에 의한 형식적 합법성이라는 범주다. 또 하나는 실질적 법치주의다. 합법성만이 문제가 아니라 합법성이 정당성을 가져야 된다는 것이다. 법에 의한다고 하더라도 그 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목적이 정당성을 가져야 실질적인 법치주의에 부합되고 비로소 그 법에 의한 지배가 정당화된다.”
―시행령에 의한 통치를 첫번째 키워드로 꼽은 이유는 무엇인가?
“현 정부 들어 시행령에 의해 입법권을 무력화하는 일이 유달리 많아졌다. 이번 정부는 특히 권력기구와 관련해 시행령을 통해 입법권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들이 검찰의 직접 수사권 범위를 시행령을 통해 확대 개편한 것, 정부조직법과 경찰법을 무력화하는 경찰국 설치, 또 최근 대통령경호법 시행령을 통해 경호처장이 경찰과 군을 지휘할 수 있도록 한 것 등이다.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시행령을 통해 법이 정하고 있는 것을 무력화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통치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 정치적 오만을 드러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법치주의의 형식적 측면마저 깨뜨리는 것이다. 법치주의는 왕이 왕 마음대로 하던 것을 못하게 하고 국민이 선출한 입법부가 만든 법을 행정부가 집행하도록 한 것인데, 국회가 만든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확장하게 되면 법치주의 근간이 무너진다. 권력분립과 법치주의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방식이다.”
―검찰 공화국에 대한 우려는 윤석열 정부 출범 때부터 제기됐는데, 실제 집권 이후 나타난 문제점은 무엇인가?
“검찰은 대통령,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에 이르기까지 수직적으로 장악이 된 상태고, 경찰은 행정안전부 장관이 만든 경찰국에 의해 장악되고, 국가정보원·금융감독원 같은 경우도 복심을 심어놓는다든지 해서 중요한 권력기관에 대해서는 사유화가 과도하게 진행되고 있다. ‘검사 윤석열’이 주목받았던 계기 중 하나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한 말인데, 상당히 멋있게 들렸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때 전형적인 검사주의, 검찰주의를 표방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말로 하면 조직에 충성한다는 것인데, 이는 조직적 지배구조를 갖는 검찰에서는 상관인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검찰은 조직에 충성하면 안 되고, 국민에 충성해야 한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고, 법치주의라고 하는 것은 인치주의, 즉 사람에 의한 지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인사와 관련된 문제를 보면 사적인 관계들을 통해 채용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국가 권력의 사유화라는 문제점을 느끼게 된다.”
―검찰 수사에서 전 정권이나 야당에 대한 수사는 전방위적인 반면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은 전혀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수사의 공정성은 결과의 공정성만이 아니라 수사 시작부터 수사 과정, 그리고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 재판 절차 모든 게 동등해야 하는 것이다. 검찰이 전 정부와 야당 인사에 대해서는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 절차를 진행해왔다. 한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재판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여러 가지 의혹들이 녹취록 등의 형태로 굉장히 많이 등장하고 있다. 과연 야당 인사와 관련한 혐의 정황이 이 정도였다면 그냥 덮어놨을까 의문이다. 죄가 있고 없고의 문제를 넘어서라도 수사의 기본적인 형식적 평등마저도 저버린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불공정으로 인해 현 윤석열 검찰이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수사가 오히려 정당성을 상실하는 게 아닌가 싶다.”
조영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이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노조법 2·3조 개정’ 요구 농성장에서 하루 동조단식을 하며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지난 정부에서는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명분으로 정부에 대항했는데 지금의 검찰은 그렇지 않다.
“이제는 이미 한몸이 다 돼버린 상태 아닌가. 이런 문제에 대해 과거 수사·기소권 문제처럼 검사들이 분연히 일어나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때 비분강개하던 검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수사 과정에서 나타나는 절차적 정의와 관련해 짚어볼 대목도 있는 것 같다. 최근 검찰이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김만배씨의 변호인 사무실과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한 데 대해 변호사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는데.
“변호사의 변호권을 직접적으로 무력화하는 것이다. 변호사와 형사 피고인은 깊은 신뢰 관계를 갖고 법정이나 수사 과정에서 이야기할 수 없는 진술이나 증거물에 관한 이야기까지 할 수가 있고 그러한 내용들이 변호사의 사무실에 서류로 남아 있거나 컴퓨터에 남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압수수색을 한다면 대한민국의 어느 피고인이 변호인을 신뢰하고 자기의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겠나. 이런 면에서 변호인의 변호권, 그리고 피고인의 방어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키워드로 불통과 진영 정치를 꼽았는데, 최근 노동 현안 대처에서 이런 점이 두드러진 것 같다. 윤 대통령은 “노조 부패도 공직 부패, 기업 부패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척결해야 할 3대 부패의 하나”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지금 윤 대통령이 말하는 노조 부패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는 없다. 노조에서 일정하게 비치해 놔야 할 장부들을 보겠다고 했는데, 그것은 제도가 원래 그렇게 돼 있고 노조에는 모두 내부적인 회계감사 시스템이 돼 있다. 횡령이나 배임 같은 게 있다면 경찰·검찰이 수사하면 되는 것이다. 정치권력이 나서서 마치 어떤 부패 집단처럼 만드는 것은 결국은 노조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화물연대 파업에서 얻어진 학습 효과, 즉 ‘노조 때리기’가 윤 대통령의 지지도로 이어진다는 학습 효과에서 빚어지는 또 다른 무리수가 아닌가 싶다. 한편으로는 대통령의 발언이 하나의 지침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든다. 다른 분야에서도 그래왔듯이 누군가 노조 내부 문제를 고소·고발하면 그것을 받아서 경찰이나 검찰이 수사에 나서는 패턴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다.”
―윤 대통령은 ‘노사 법치주의’라는 용어도 썼는데.
“그런 용어는 처음 들어봤다. 헌법과 법률에 노조는 자주적으로 설립되고 노동3권을 향유하도록 하고 있다. 기업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기관도 노조 활동에 개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게 근본적인 노조의 설립 이유다. 지금 정부의 적대적 태도는 노조에 관한 헌법과 법률에 반하는 것이다.”
―얼마 전, 경찰이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진압 과정에서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며 쌍용차 노동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대법원이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들이 13년이나 손해배상소송으로 부당하게 고통받아온 것이야말로 법치주의의 실패가 아닌가?
“13년이 걸렸다. 파업 과정에서 경찰이 기중기를 동원하고 헬기가 뜨고 특공대를 투입하고 무자비한 탄압이 있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렇게 경찰의 공격적인 진압에 저항한 행위에는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판결로서 상당히 의미가 있다. 손해배상·가압류라고 하는 무기를 쓰는 순간 노동자들은 설 자리가 없게 된다. 쌍용차 구조조정 이후 3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 그 배경에는 구조조정 해고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손해배상소송으로 인한 부분도 컸다고 생각한다.”
―지금 농성이 진행 중인 노조법 2·3조 개정 요구가 그런 맥락인데.
“노조법 2·3조 규정은 1953년도 노조법 제정 당시부터 있었던 조항이다. 그 이후 생겨난 다양한 형태의 노동관계, 노사관계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지금 비정규 노동자가 약 1천만명 된다는 보고도 있다. 화물차 노동자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 사내하청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 통계로 잡힐 수 없는 수많은 형태의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또 2003년 손해배상·가압류에 저항해 배달호 열사가 분신했던 때로부터 20년이 지났다. 이렇게 70년, 20년 동안 묻혀왔던 구체적인 노동관계에 맞게 법을 바꿔야 한다는 절실함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요구가 나왔다. 쌍용차 판결과 함께 대법원은 현대·기아차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노사관계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원청이 사용자라는 판결을 내렸다. 최소한 이런 대법원 판결들의 취지에 맞게라도 법을 바꿔야 한다. 그것이 더 이상 갈등이 재연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 공동체가 가야 할 방향이다. 진정한 법치주의라는 것은 공존의 체제 속에서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한쪽을 적대적으로 말살하고 뿌리를 뽑겠다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태도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물러나면 끝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다.”
조영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이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개정’ 요구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정부 태도에도 그런 시각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지 않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라고 행정안전부를 만들고 장관을 임명했는데 이상민 장관은 엊그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가동은 촌각을 다투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법적인 책임이 아니더라도 도의적·정치적 책임이 있는 건데 어떻게 저렇게 후안무치한 발언을 할 수 있나. 여기에는 정치적인 맥락에서 밀리면 안 된다라고 하는 강한 내부 시스템이 작동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전반적인 현안에서 보는 것처럼 정권의 안전을 위해 철저하게 국민의 의사를 외면하는 것 같다.”
―정부는 이태원 참사를 다룰 때도 법적 책임, 형사처벌에만 방점을 찍고 있는 것 같다.
“검사적인 시각이다. 정치적·도의적 책임은 법적인 책임이 아니라고 평가절하하는데, 이런 태도가 오히려 형사적 책임을 명백히 가리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국을 통해 경찰을 통제하고 경찰의 인사권자인데, 장관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이 과연 그를 상대로 칼날을 겨눌 수 있을까. 장관이 물러나는 것은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것을 넘어 성역 없이 진정한 형사 책임을 가리기 위해 필요한 첫번째 조건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등에 대한 특별사면도 법치와 공정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결국은 자신들이 적폐라고 조사해서 처벌했던 사람을 다시 사면한다는 점에서 이율배반이며 촛불정신의 훼손이다. 보수세력을 폭넓게 아우르겠다는 정치적 메시지인데,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에 대해서는 조롱을 하는 인상까지 받는다. 민변이나 시민사회 쪽에서 대통령 사면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계속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정치적으로 사면권을 이용하고 있다. 진영정치를 위해서는 갈 데까지 가는 것 같다.”
―오늘 단식농성에도 직접 참여하고 그동안 20일 넘게 단식 농성하는 노동자들을 지켜봤는데 어떤 심정인가?
“늙은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인 것 같다. 40대, 50대 노동자들이 밥을 굶고, 또 유최안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같은 경우는 0.3평 공간에 스스로 몸을 가두고, 이럴 수밖에 없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답답함, 이런 부분들이 노동자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꽂혀 있다. 하지만 분노와 절망 속에서도 어쨌든 싸워나가겠다는 결의가 많다. 참 처연하다는 표현이 떠오른다. 이들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것, 극단적으로 가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들은 잠시 깨지더라도 굴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해결되지 않고 끝난다면 잠시 잠복해 있을 뿐 내년 내후년에도 반드시 다시 일어나게 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정부가 마음을 열어야 한다.”
pi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