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맞아 ‘생각 비우기’ 유행 싱잉볼 명상에 한달에 200명 몰려 ‘불멍’ ‘모래멍’ 등 멍때리기 소품 사기도
28일 낮 직장인들이 강남의 ‘젠테라피 네츄럴 힐링센터’를 찾아 싱잉볼 명상을 하고 있다. 이우연 기자
연말을 맞아 ‘생각 비우기’ 활동에 몰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명상’ 혹은 ‘멍때리기’ 등 각기 부르는 명칭은 다르지만 초연결 사회에서 쏟아지는 과도한 정보를 차단하거나, 업무 및 일상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비우기 위해 강제로 뇌를 비우는 시간을 갖는 것이 목표다. 싱잉볼을 두드리거나, 불을 보며 멍을 때리는 등 방식도 다양하다.
지난 28일 낮 3시30분, 평소 같으면 이 시각에 한창 일하고 있을 직장인 4명이 서울 강남의 한 ‘싱잉볼 센터’를 찾았다. 전시·컨벤션 기획 업무를 하는 회사의 팀원들인 이들은 연말을 맞아 시끌벅적한 대규모 회식 대신 싱잉볼 명상을 택했다. ‘노래하는 그릇’이라는 뜻의 금속 그릇인 싱잉볼을 두드려 나오는 음과 울림 파장에 집중하는 명상법이다. 팀장인 조민경(33)씨는 “창조적인 기획 업무를 하다보니 마음이 계속 소진됐고 정작 내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며 “일을 쉴 때도 업무 생각이 끊어지지 않고, 놀거나 운동하는 것도 에너지를 써야하는 일이라 힘들다”고 했다.
이들과 함께 1시간30분 동안 ‘싱잉볼 테라피 요가’ 수업을 들었다. 1시간 가까이 간단한 요가 동작으로 몸을 풀었다. “나의 몸이 바닥과 하나가 된 것처럼 펼쳐주세요.” 양반 다리를 한 다음 상체를 숙여 바닥에 엎드리는 동작을 한 채로 강사가 두드리는 싱잉볼 소리에 몸을 맡겼다. 처음에는 일과 관련된 전화가 올까봐 휴대전화가 놓인 쪽이 계속 신경 쓰였고, 밀린 업무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상태가 정말 가능할까’ 의심도 들었다.
그러다 수업이 끝나기 20분 전, 바닥에 누워 본격적으로 싱잉볼 소리에 몰두할 시간을 갖게 됐다. 머리 주변과 몸을 이불로 감싼 뒤 눈을 감고 싱잉볼 소리와 파동에 집중했다. 몸이 커다란 싱잉볼 안에 들어와있는 기분이었다. 의식은 있었지만 생각이 없는 상태가 이어졌다. 명상이 종료됐음을 알리는 ‘띵’하는 쇠종(띵샤) 소리를 듣고서야 몸의 감각이 느껴졌다. 참석자들은 “소리에 집중하다보니 자연스레 생각이 비워졌다”, “힘들면 안 해도 된다는 선생님의 말이 좋았다”, “소리에만 집중하면 돼서 어렵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내에 만들어진지 10년이 된 이 센터에는 한달에 200명 정도가 싱잉볼 소리를 들으러 방문한다고 한다.
명상 혹은 ‘소리멍(소리 들으며 멍때리기)’ 도구로 사용되는 싱잉볼. 이우연 기자
명상보다는 가벼운 느낌이지만, 생각을 비우는 ‘멍때리기’ 활동도 몇년째 젊은 세대에게 유행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유튜브로 싱잉볼이나 ‘갈대숲 소리’, ‘계곡물 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를 듣는 소극적인 행동부터, ‘멍때리기’를 주제로 잡은 카페에 가거나 캠핑을 떠나 장작불을 응시하는 ‘불멍(불+멍때리기)’과 같은 적극적인 행위까지 다양하다. <뉴욕타임스(NYT)>도 지난해 기사에서 한국의 ‘멍때리기(Hitting Mung)’ 유행을 소개하며 “한국인들은 구름과 나무를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9월 한강사업본부가 주최하는 ‘멍때리기 대회’에는 3800명의 참가 신청자가 몰려 참가 접수가 조기 마감 됐고, 경기 시흥 ‘갯골 멍때리기 대회’, 전남 해남 ‘해변 멍때리기 대회’ 등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도 멍때리기 대회가 열렸다.
멍때리기를 도와주는 도구를 구입하는 이들도 있다. ‘불멍’을 위해 가정용 에탄올 난로를 산다거나, ‘모래멍’을 위해 모래가 흐르는 액자를 사는 식이다. 황지혜(27)씨는 “요즘 주변인들 사이에서 ‘멍때리기’ 소품을 선물로 주는 것이 유행”이라며 “최근에는 친구에게 에너지 보존 법칙을 이용해 구슬이 끊임없이 회전하는 ‘무한동력 구슬멍’ 장난감을 선물했다”고 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